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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러첸 단독 인터뷰] 우리행사는 북한정부 '도발' 목적0

03-08-27 지구인 1,009
◀경찰, 북한 기자단과의 잇따른 충돌로 극도로 예민해진 노르베르트 폴러첸씨가 26일 서울 모처에서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미디어센터 앞 북한 기자단과의 충돌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김진평기자

26일 폴러첸(45)씨는 목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채 은신처에서 기자를 맞았다. 나흘 전 북한으로 돈과 라디오를 넣은 대형 풍선을 띄워 보내려다 경찰의 진압으로 왼쪽다리와 목을 다친 탓이다. 이틀 전에는 대구 유니버시아드 미디어센터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고발하는 피켓시위를 하다 북한 기자단에 가격당해 의식을 잃기도 했다.
요즘 뉴스의 초점이 된 그는 “북한에서도 경찰에 의해 폭행당해 본 적이 없는데 민주주의 나라라는 남한에서 이런 일을 당한다는 건 참 기가 막힌 일이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후유증 때문인지 늘 힘에 넘쳐 속사포같이 말을 늘어놓던 이 사내는 풀이 좀 죽어 있었다. 말 중간중간에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에게 “당신의 시위방식이 북한을 도발할 수도 있고 장기적인 남북관계에 차질을 빚을 수 있지 않은가?”라는 하자 “물론 우리는 북한 정부를 도발하기 위해서 그 행사를 조직한 것”이라고 응수했다.

“나치 정권하에서 히틀러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데 조용히 미소만 지으며 무슨 변화가 생기겠는가? 우리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위해 북한을 정치적으로 ‘도발’한 것이다.”

이번 사건이 나면서 그는 잠적하다시피 했다. 그를 찾아내는 데 만 하루가 걸렸다. 그는 “모처로 오면 내 친구가 마중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신처에서 친구의 목소리를 확인한 뒤에야 문을 열어줬다. 극도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것 같았다.

유니버시아드대회 사건으로 화제를 돌리자 그의 표정이 상기되기 시작했다.

“U대회 때 나는 어떤 폭력적인 행동도 하지 않았고 그저 북한 어린이들의 사진을 들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의사이고 비폭력주의자다. 그런데 갑자기 내 뒤에서 각목이 날아 왔다. 그걸 ‘몸싸움’이라고 하는 한국 언론들에 대해 몹시 실망했다.”

기자가 “U대회와 같은 평화적인 행사 때 한국인도 아닌 당신이 그런 식으로 행동한 데 대해 이견도 있다”고 하자 그는 “U대회가 세계의 평화를 위한 행사인가?”라며 반문했다.

“당신은 북한의 ‘미녀 응원단’의 흐트러짐 없는 행동과 그 미소를 보았는가? 나는 나치하 독일에서 열렸던 베를린올림픽을 떠올렸다. 지금 이 시간에도 굶고 학대받는 북한 어린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는데, 한국 언론들과 한국인들은 모두 저 작위적인 웃음의 응원단에만 집중하고 박수를 보내고 있을 따름이다.”

이방인의 신분으로 이처럼 집요하게 북한 인권에 대해 매달리는 그의 동기는 늘 궁금한 대목이다.

“만약 당신의 옆집 아이가 부모에게 맞아 죽어가고 있다고 가정하라. 당신은 그 집 문을 벌컥 열고 그 아이를 구해 치료해줘야 한다. 그게 당신 나라이든 아니든 그건 상관없다.”

그는 자신을 ‘라우드 스피커(Loud speaker:외치는 사람)’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당신이 100만가지 좋은 일을 하고도 그걸 알리지 않는다면 세상은, 세상의 부조리는 변하지 않는다. 북한 인권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만 할 뿐이다. 내가 주연배우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을 ‘햇볕정책의 적’으로 묘사하는 한국사회 일각에 대해 “김대중 정권이 북한과 비밀자금을 거래한 것은 하나의 범죄이다. 나는 북한 주민의 인권을 먼저 고려하지 않는 정책이라면 그게 햇볕정책이 됐건 뭐가 됐건 절대 인정하지 않고 ‘올바르다’고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는 27일 한국을 떠나 동남아에서 탈북자들이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예정이다. 그리고 베이징에서 열릴 6자회담 결과를 지켜보고 자신의 행로를 결정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제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건가?”라는 질문에 그는 깁스를 한 목을 좌우로 흔들었다. “나는 내 임무를 마칠 것이다. 내가 할 일이 남아 있는 한국, 서울을 계속 기억할 것이며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내 궁극적 목적지는 북한의 평양, 내 어린 환자들이 있는 곳이다.”

(김남인기자 artemi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