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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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7-31 바람 590

大道

특별히 選好함이 없으면 大道를 앎에 어려움이 없다.
愛憎이 쉬면, 모든 것이 가림 없이 밝아진다.
허나, 마음에 작은 분별심이라도 들면, 하늘과 땅이 한도 없이 갈라선다.
참 진리를 알려하거든, 옳고 그르다는 견해를 마음 속에 두지 아니할 일이다.
좋고 싫음을 가리려함은 마음의 병이 된다.
事物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마음 본래의 평화로움 하릴없이 흐트러지게 된다.

道란 남고 모자람이 없는 큰 공간과 같아 이미 그 자체로서 완전한 것이다.
사람들이 사물의 참 本性을 보지 못함은 받아들이고 배척함을 골라하기 때문이다.
세상일도 내면세계의 空함도 대저 하나임을 알아
이들에 집착함이 없이 平靜하면 어리석은 견해들은 제 스스로 사라지게 된다.
行함을 멈추어 無爲에 얻으려하면 그 노력 자체가 有爲가 된다.
어느 쪽이던 한 極端에 치우쳐 있는 한, 이 큰 '하나'의 원리를 알 수가 없다.

이 一道('하나'의 원리)를 알지 못하면 행위도 무위도 모를 것이며,
主張함도 否定함도 모를 것이다.
사물의 실체를 否定하면 사물의 현실성을 잃게 되며,
사물의 비어있음을 主張하면 또한 사물의 현실성을 잃게 된다.
이를 論하면 논할수록, 자꾸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참 뜻은 멀어져만 가게 된다.
말도 그만두고 생각도 접어두면 알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마음을 本源으로 돌이키면 본래의 뜻을 알 수 있으나,
形狀에 이끌리면 本源을 잊게 된다.
깨달음에 이르면 形狀도 비어있음(空)도 초월하여 넘어선다.
이 텅 빈 세상에 온갖 변화에 實體가 있어 보임은 단지 無知 때문인 것이다.
진리를 구하려 하지 말일이다. 見解를 重히 여기지 아니하면 그만이다.

二元的 마음 상태를 항상 주의하라.
이것저것을 따지고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마음의 본성이 흐트러져 어리석음에 빠지게된다.
모든 것이 이 '하나'(일원)로부터 생겨 나오지만, 이 '하나' 조차 집착할 것은 못된다.
마음이 道에 듦에 흔들림이 없으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마음에 거슬림이 없다.
세상일에 거슬림이 없는 마음은 이미 어리석은 옛 마음이 아니다.

분별심이 멎으면, 어리석음도 그친다.
思惟의 對象이 사라지면, 사유의 主體도 없어진다.
이는 마음이 없으면 사물도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물은 마음이라는 주체에 의하여 대상이 되고
마음은 사물을 대상으로 삼을 때 주체가 된다.
이 둘의 相對性을 이해하면 空과 合의 實相도 알게된다.
이 둘은 그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있을 수 없으며
하나가 생기면 다른 하나도 함께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그 둘 중 어느 하나만 생겨도 온 세상이 따라 생긴다.
거칠고 고운 것을 가리려하지 아니하면
偏見과 見解등에도 관심을 잃게된다.

大道를 깨우치기란 쉬운 일도 어려운 일도 아니다.
어리석은 이 들은 두려움과 疑心이 많아
서두를수록 더디 가게 되며, 그 執着하여 매어 달림에 다함이 없다.
득도라는 생각일 지라도 이에 집착하면 이미 그르친 것이다.
萬事를 제 갈길 대로 가게 두면, 오는 것도 가는 것도 없다.

事物과 나 자신의 本性을 알아 지키면, 늘 欣快하며 動搖가 없다.
생각이 얽매어 있으면 萬事가 混濁해져서 진실을 볼 수가 없고,
批判의 성가신 버릇으로 하여 짜증나고 지치게 한다.
分別짓고 나누어 놓음으로 하여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道와 하나로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감각이나 생각도 멀리하려하지 않을 일이다.
실로, 감각이나 생각조차도 거리낌 없이 그대로 받아들임이 곧 깨달음과 다를 것이 없다.
賢者는 추구함이 없으나, 어리석은 이들은 목표를 세움으로 스스로를 속박한다.
法(Dharma)은 오직 '하나'뿐 이다. 분별심이란 집착하려는 어리석음으로부터 생겨난다.
法(Dharma)을 마음으로 찾고자 함은 오해중에 오해인 것이다.
수행하고 수행하지 않고를 구별함도 오해이다. 깨우침에는 좋고 싫음이 없다.
모든 二元的 思考는 無知에 의해 類推되어 나온다.
이는 마치 꿈과도 같고 공중에 뜬 꽃과도 같아 愚人은 이를 붙들으려 애쓴다.
얻음과 잃음, 옳고 그름 - 이런 생각들은 모두 한 순간에 털어 버려야 할 것 들이다.

마음이 잠들지 아니하면, 몽상은 스스로 사라진다.
마음이 분별을 짓지 아니하면, 사물은 하나의 본성으로 있는 그대로 있을 뿐이다.

이 '하나'임을 이해하면 모든 얽힘으로 부터 풀려난다.
사물을 하나로 보게 되면, 영원의 진아를 이해게 된다.
이 인과도 인연 조차도 이르지 못하는 세계에세는 비교나 비유도 의미를 잃는다.

고요함이 곧 움직임이며, 움직임이 곧 고요함임을 보게되면
움직임도 고요함도 사라진다.
이런 이원(二元)성들이 존재하지 않는 자리에는, 그 '하나' 조차 이미 없다.
이 궁극의 세계에는 법도 법의 설함도 모두 쓸데 없는 일일 뿐이다.

아상에 기반을 둔 모든 노력이 멈추고, 의혹과 부단함도 사라지고 나면
진정한 신뢰의 삶이 가능해 진다. 일순에 속박으로 부터 자유로와 진다.
아무 것도 내게 매달리지 못하고, 나도 아무 것에도 매달리지 아니한다.
모든 것은 공하고 맑으며 스스로 밝은 빛으로 부드러이 비춘다.
마음이 스스로의 의지로 하고자 함이 없으니,
생각도, 느낌도, 지식도, 상상도 더이상 별 가치가 없다.
이 如如함의 세계에는, '나'도 '나' 아닌 것도 없다.

이 실재 세계와의 造化를 알고자 하는가?
의혹이 일 때면 그저 '不二'를 상기하면 된다.
이 '둘이 아님' (不二)에는 분리된 것도 없고 포함되지 아니하는 것도 없다.
시공을 불문하고, 覺을 이룸이란 이 간단한 진리를 삶에 있다.
이 진리는 시간과 공간의 크고 작음에 구애 됨이 없으나,
마음의 한 줄기 생각은 천년을 지어낸다.

공空함이여, 공함이여. 그러나 무한의 우주는 언제든지 우리의 눈앞에 서있다.
규정짓는 마음이 없으니, 경계를 나누는 마음이 없으니,
무한히 크고, 무한히 작은 것들 - 아무 차이가 없다.
존재와 비존재 - 아무 차이가 없다.
의혹과 논쟁들은 이 진리와 아무 관계가 없으니, 그런 일들은 시간의 허비일 뿐이다.

이 '하나'가 곧 세상의 모든 것과 다르지 않다. 분별심 없이 그 속에 들어가 섞이라.
이를 깨달으면 완전 불완전 따위에 대한 걱정이나 강박이 없다.
이에 대한 신념은 곧 一元으로 드는 지름길이다.
신념을 지닌 마음은 곧 이 '하나'와 이미 하나된 마음이다.

말들!
道에는 말이 이를 수 없다.
道에는 어제도, 내일도 없다.
오늘 조차도 없다

/ 셍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