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에서 보편적인 종교로 성공한 종교는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유교, 힌두교 등인데 이들은 자신의 종교가 발생한 지역의 특수성을 아직도 지니고 있지만 그 특수성을 벗어나서 세계적으로 토착화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계속적으로 자신의 프로그램을 현실에 맞게 높혀왔다. 그런데 우리의 단군신앙은 그 내용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시대감각이라고 할까, 역사적 유행이라고 할까, 문화적 유형이라고 할까--다시말하면 당대마다 현실성이라는 것에 적응(업그레이드)하는 데에 실패한 종교이다.

단군신앙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한민족이 문화를 보편화하는 데 역부족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보편성에는 적어도 합리성과 철학적인 구성이라는 이화(理化)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단군신앙이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종지(宗旨)로 하고 있는 점은 아이러니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일연스님이 단군을 삼국유사에 기록할 때 다분히 불교에서 얻은 보편화의 기법을 적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케 한다.

단군신앙의 종지를 불교적인 용어로 재정립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말이다. 홍익인간, 이화세계야말로 바로 대승불교의 종지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일연스님은 분명히 민족적 특수성을 세계적 보편성으로 승화시킬 줄도 알았다는 점에서 문화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일원화할 수 있는 탁월한 스님이었던 것 같다. 일연스님에 의해 단군은 부활했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뒤를 이은 인물이 없어서 단군신앙은 보편화에 실패하고 민족종교로서의 자리도 위태롭게 되고 말았다. 그저 국난의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한번씩 떠올리는 감성적 차원의 종교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았다.

단군신앙이 현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마디로 종교적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그저 '무교의 기법'이나 '기복(祈福)의 기법'이나 '조상숭배의 기법'으로는 현대에 살아남지 못한다.

출처: http://mind.net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