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원님의 '연기'에 대한 글을 보고 적습니다.1

22-05-11 hanaloum 60

저는 개인적으로 부처님의 깨달음과 함께, 연기, 즉 세상이 인과론으로 연결되었다라는 깨달음을 거의 동시에 얻었다는 것을 듣고 참 신기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상태이기에 연기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라고요.

물론 저는 조금 멍한 상태로 제 생각을 볼 수는 있지만, 어떤 단계에 오르면 연기를 깨닫게 될까?라는 의문은 들었죠..


그런데 여원님은,

"삼라만상이 다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 순간 ‘연기’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삼라만상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나라는 것이 독립되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증발해 버린 것이죠. 이전에는 삼라만상 따로 있고, 나 따로 있었는데 그 둘이 합체되어 한 몸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이라고 말씀하시네요..


부처님은 출가할 때 권력자가 백성을 착취하고, 백성은 소를 착취하여 서로 큰 고통을 가하는 것을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이런 순환 상태를 없애고 고통을 없애려는 생각을 가지신 듯합니다. 저는 이것과 연기와 아직 연결이 안되기는 합니다. 이게 연결되려면, 공산 사회를 지향한다든지, 사회 개혁을 지향하든지 해야 할 듯한데.. 불교는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끊어버리고 자신의 고통의 해방에 촛점을 맞춘다는 것이 저에게는 좀 불편합니다.


따라서, 저는 불교가 직업을 가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속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고통을 없애려고 수행을 하면서 구걸로 남을 착취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연기라는 큰 깨달음이 단지 '없음(무)'로 승화하는 것은 저와 같이 초보 명상가에게는 좀 너무 작은 행동으로 보이는 측면도 있습니다.


단, 제가 불교에 대한 지식이 너무 짧아서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 22-05-11 여원
    저는 20살 때 자생적 공산주의자였습니다.
    나의 자유를 위해서 기본적인 의식주를 보장받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직업인이 되기가 싫었으니까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굶어 죽지 않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그것을 충족해 줄 수 있는 유토피아가 ‘공산주의’였습니다.

    천주교신자이지만 사람이 태어날 때 성향과 사회적인 조건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데 무조건 결과를 가지고 심판하는 기독교를 회의적으로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때는 안티기독교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공식적으로는 천주교신자입니다.

    연기라는 깨달음은 단지 무가 아닙니다. 나와 더불어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 나아가 무정물을 포함한 일체 만생만물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그러니 매우 역동적이고 현실참여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만이 나의 조화와 균형도 유지된다는 법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생의 세상에서는 불교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회에서는 거의 그런 성향을 가졌다는 것을 남들은 눈치 채지 못합니다. 오히려 너무나 정치적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저의 불교에 대한 깨달음은 ‘철저한 현실참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