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경제학4

03-08-29 지구인 697
필자는 앞글에서 환생을 부정하는 것도 문제고 그렇다고 끝없이 환생한다는 관념도 문제라는 식으로 논지를 전개시켜 나갔는데 이를 경제학적 마인드에다가 적용시켜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말씀드릴 수 있겠다. 경제학의 모토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산출을 이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개개인을 투자 비용으로, 인간의 성숙을 산출로 상정한 후, 환생에 대한 어떤 관념을 채택할 때 우주가 가장 효율적인 경제행위를 했다고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을 검토함으로써 가장 타당한 환생의 관념을 도출해 내도록 하겠다. 사실 환생의 개념만 제대로 캐고 들어가도 기독교나 불교 같은 기성 종교는 밑바닥부터 무너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환생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라 본다.

각설하고... 먼저 환생을 부정하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기독교가 가장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는 환생을 부정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선 환생관이라 할 수도 없다. 하지만 편의상 환생을 부정하는 환생관이라 이름 붙였다. 결론을 내린다면 환생을 부정하는 경우 우주가 하는 경제행위는 한마디로 가장 밑지는 경제행위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한 번의 생을 통해서 성숙한 인간으로 변모된다는 것은 아마데우스 즉 신이 사랑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희귀하기 때문에 환생을 부정한다면 우주는 아무리 용을 써도 가장 소출이 적은 농사를 짓게 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환생을 무한 긍정하는 경우다. 불교나 힌두교가 이 입장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우주는 재미적은 장사를 하게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입장에서는 인간은 끝없는 윤회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생사의 굴레로부터 해방된다(해탈)고 가르치고 있으나 현실을 본다면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기에는 너무나 삶의 조건이 가혹하다. 빈부의 격차, 지식의 격차, 미추의 차이, 신분의 차별, 학벌의 차별, 가족간의 갈등, 민족분쟁 등이 하루하루 우리의 삶을 옥죄어 들어오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 성인군자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다. 근대화되기 이전에도 도를 닦아 성인의 반열에 오르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세상이 복잡해지고 좁아진 오늘날 道를 얻기는 더욱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시간이 갈수록 度가 더해질 것이라 본다.

이같은 입장은 또한 인간의 문제를 인간 개개인을 넘어선 차원으로까지 확대시켜 보지 못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인간은 항상 자신보다 더 큰 사회적, 문화적 굴레 속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도외시한 채 자신의 해탈만을 지향한다면 많은 사람을 성숙의 길로 인도하기는 커녕 자신마저도 큰 도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불교 같은 선천 종교도 이런 약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구원론에다가 기독교의 메시아적인 요소를 첨가했으니 그것이 바로 미륵사상이다. 까마득한 훗날 미륵이라는 이름의 부처가 출현하여 뭇 중생들을 닦은 근기에 따라 고루 성숙케(구원) 할 것이라는 것이 미륵사상의 요점인 바, 그러나 이 경우에도 구체적인 시간론이 배제되어 있어서 술에 물탄듯 맹숭맹숭하기만 하다. 도대체 까마득한 훗날이란 언제를 말하는가? 13억 6천만년? 그건 조만간 죽어 없어질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 그런 메시아관은 있나 마나 한 것이다.

요약해보면 환생을 부정하든 긍정하든 둘다 우주로서는 밑지는 장사를 하게끔 하는 논리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좋은 건 환생을 인정하되 그것이 무한반복된다고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정도까지 반복된 후 대량으로 성숙된다고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여기서 환생이 허용되는 시기를 산정하는 문제가 나오는데 이 또한 어렵게 생각할 건 없다. 역사철학의 대명제인 파르스 프로 토토pars pro toto의 법칙을 적용하면 간단하다.

파르스 프로 토토의 법칙에 의하면 부분은 큰 것을 반영한다. 따라서 일년이라는 시간대 속에서 초목과 곡식이 자라고 영글고 성숙하듯 인간 또한 지구의 1년보다 더 큰 일년의 시간대 속에서 대국적으로 나고 자라고 성숙해 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상의 1년에서도 가을에 과실이 영글어 수확을 하듯, 보다 큰 사이클에서도 가을에 이르러야만이 인간이라는 곡식을 성숙시켜 수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간대의 비밀을 가장 잘 묘사한 인물이 붓다도 아니요 예수도 아닌 바로 유가의 소옹(흔히 호를 따서 소강절이라고 한다)이라는 인물이다. 따라서 인간을 낳아 길러 성숙시키는 대국적인 시간대는 소옹의 원회운세설에 따라 도출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할 것이다.(소옹의 시간관념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런데 이런 입장을 취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볼 때 인간의 힘만으로 대량 성숙(대량 도통)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인류 전체를 보다 높은 경지로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는 초인간적인 존재가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필자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환생관은 기독교의 메시아관과 불교의 환생관 그리고 유가의 시간관이 짬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환생에 대한 이같은 논리를 취할 때만이 우주가 그런대로 실속있는 경제행위를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임재현/은하가족 - http://column.daum.net/galaxyfamily
  • 03-08-31 원정
    "까마득한 훗날 미륵이라는 이름의 부처가 출현하여 뭇 중생들을 닦은 근기에 따라 고루 성숙케(구원) 할 것이라는 것이 미륵사상의 요점인 바"
    다른 부분도 좀 그렇지만....
    이 부분은 명백한 오류이군요.
    불교에서의 미륵은 바로 내 자신입니다.
    물론 이 때의 나는 에고의 모습으로서의 나라기 보다는 에고의 나를 포함한 일체의 삼라만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만.....
  • 03-08-31 원정
    그리고 내가 미륵임을 깨닫기만 하면 까마득한 후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이 모습 이대로" 미륵의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같은 경전을 읽어도 사람에 따라 보는 바가 다릅니다.



  • 03-08-31 지구인
    그 부분이 명백한 오류라는 건 원정님의 견해일 뿐이죠. 원정님이 어떻게 해석을 내리더라도 미륵사상은 엄연히 실존역사속에 존재해왔습니다. 궁예가 자신을 미륵이라 한 것도 백제불교에 뿌리내려있던 메시아로서의 미륵사상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미륵이 석가의 제자라는 식의 주장은 후세에 첨가된 것인데 이에 대한 자료는 다음에 찾는대로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미륵을 '나 자신'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원정님의 사견일 뿐, 실재역사에 근거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 누구는 '친구'라는 뜻이라고도 하더군요.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에서 天主가 훗날 다시 관념의 天(人乃天)으로 돌아가버리는 식이죠.
    경전구절을 어떻게 해석하던 그건 개개인의 자유입니다만, 그것이 현실역사에 실질적으로 용사用事를 하려면 결국 정명正名이라는 과정의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내 개인의 지적충족에만 머무른다면 모르겠지만 타인을 지향하는 무언가가 될 때에는 말입니다.
  • 03-08-31 원정
    제가 법화경을 올려 놓았으니까, 법화경으로 답변을 대신합니다.
    해석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보이는 만큼 하는 것이구요.
    누구의 해석이 더 본질에 가까운 해석인지는 각자 때가 되어야 알 것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