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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세상
원정님 답에 대한...
14
24-01-22
모모
52
올리는게 쉽지가 않네요.
여기에..공의 시각도.. 잘 나와 있습니다.
원정님의 시각은..9식..묘관찰자.. 로 보면.. 이해가 쉬울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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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3
모모
제가..9식은 처음봐서..공부차 좀뒤져봤거든요.
그래서 가장 설명이. 잘되어 보이는 걸로 가져와 봤어요.
내용을 읽어보니.. 최면에서 다루는 잠재의식..또는 우주의식 이라 하는 거랑 거의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네요
전 개인적으로 제가 본 사람중엔 단 두분정도가 9식에 계신분이라 생각되는데..
전..상상도 못하는 경지라....서요.
덕분에 공부는 잘하네요^^
ㆍㆍㆍ ㆍㆍㆍ ㆍㆍㆍ
아래는 9식에 대한 설명 발췌.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이를 세분하면, 우리 인간은 육근(6根)이라 해서 안(眼-눈)⋅이(耳-귀)⋅비(鼻-코)⋅설(舌-혀)⋅신(身-몸)⋅의(意-정신)라는 몸의 여섯 기관으로 형성돼 있다고 본다.
여기서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는 육체이고, 의(意)는 정신이므로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육근이 각각의 감각대상인 색(色-형체)⋅성(聲-소리)ㆍ향(香-냄새)ㆍ미(味-맛)ㆍ촉(觸-촉감)ㆍ법(法-생각)이라는 육경(6境)을 만날 때, 각각의 감각기관을 통해서 인식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인식을 육식(六識)이라 한다. 즉,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을 6식이라 한다.
인간의 인식기관인 육근(6根)이라는 몸의 여섯 기관은 대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른 작용이나 역할을 하지 않는다(식이 일어나지 않는다).
즉, 형태⋅소리⋅냄새⋅맛⋅촉감 등 감각 대상이나 개념⋅관념과 같은 사유대상(생각)이 있어야 육근이 작용을 해서 식이 일어난다(마음이 일어난다). 대상이 없이 마음이 생겨날 수는 없다.
따라서 육근이 대상인 육경(6境), 즉 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을 만나면 드디어 인식작용을 일으키는데, 그 결과 6식이 일어난다. 초기 불교에서는 6식까지만 있는 것으로 봤다.
그러던 것이 대승불교 유식학이 발달하면서 ‘식(識)’이라는 인간의 마음이 여덟 가지[팔식(8識)]로 구성돼 있다고 보게 됐다. 즉, 6식에 제7식인 말나식(末那識)과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더 해서 8식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리고 그 8식(識)의 역할을 단계적으로 나누어 생각했는데, 8식(識) 중에서 제일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으로서, 이것이 가장 바깥에 나타난 거친 식이고, 맨 앞에 나와 있다고 해서 전5식(前五識)이라고 했다.
이 전5식은 거울과 같아서 단순히 사물을 비출 뿐 인식은 하지 못한다.
인식은 모두 제6식이 한다.
전5식은 제6식인 의식(意識)의 도움을 받아야 제 기능(인식활동)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제1식은 눈으로 봐서 생기는 식이라 해서 안식이라 하는데, 즉 눈(眼)이 대상인 색(형체)을 접촉하면 안식(眼識)이 일어난다. 그런데 안식은 꽃이 있으면 꽃을 볼 뿐 이것이 장미꽃구나 라고 알아보는 것은 제6식인 의식의 작용이다.
제2식은 귀로 들어서 생기는 식이라 해서 이식이라 하는데, 즉 귀(耳)가 대상인 성(聲-소리)을 접촉하면 이식(耳識)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식은 소리를 들었을 뿐, 이 게 무슨 소리(쿠린내)라고 아는 것은 제6식인 의식의 작용이다. 이런 식이다.
이와 같이 제5식까지는 단순한 감각 기관에 불과하다. 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 5개의 식을 모두 합쳐 전5식(前五識)이라고 한다. 제6식인 의식(意識)은 전5식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분별하고 인식한다. 즉 '색깔이 노랗다', '냄새가 독하다', '맛이 좋다' 등으로 분별한다. 전5식은 스스로 분별하고 의식할 능력은 없고, 제6 의식의 도움을 받아 인식을 한다는 말이다.
그라나 제6식 의식은 전5식과는 달라 스스로 (혼자서)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다.
과거에 대한 기억, 미래에 대한 상상, 사고(思考), 추리, 판단, 예상 따위의 복잡하고 다양한 인식을 혼자서 한다.
즉, 인간의 의식 활동에는 전5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사상(思想)이라든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일어나는 여러 사고(思考), 기억(記憶), 추리(推理), 예상(豫想) 따위의 복잡하고 다양한 의식이 있다. 이것을 제6식인 의식이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전5식은 제6 의식에 의지해서 인식을 일으키는데, 그렇다면 제6 의식은 어디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식이냐 하는 것이다. 그 답을 생각해보자.
인간의 생각은 흐름으로 이어진다. 즉, 인간은 한 번에 한 가지 생각밖에 못한다. 한꺼번에 두 가지 세 가지 생각을 못한다. 그 대신 한 가지 생각은 다음 한 가지 생각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생각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런 현상을 두고 ‘생각은 흐름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앞생각과 뒷생각이 인(因)과 연(緣)이 돼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을 등무간연(等無間緣)이라 한다.
즉, 앞생각이 인(因)이 되고, 뒷생각은 연(緣)이 돼 등무간연으로 앞생각이 없어지면서 뒷생각을 발생시키므로 뒷생각의 뿌리가 앞생각이 된다.
인간의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뒷생각이 앞생각을 의지해서 일어난다고 했다. 즉, 뒷생각의 의근(意根)이 앞생각이란 것이다. 하지만 돌발사고가 나서 의식을 잃어버렸다든지, 아니면 큰 충격을 받아 정신착란이 일어나났을 경우가 있다. 그래서 생각의 등무간연이 단절될 경우, 앞생각에 뒷생각이 연이어 일어나야 하는데, 단절이 일어날 경우 제6식의 뿌리는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 심층의식(深層意識-잠재의식)의 등장
이런 문제를 해결한 것은 대승불교의 유식학(唯識學)에서 제6식인 의식의 뿌리로 제7식인 말나식(末那識;manas-vijnana)을 상정함으로써 해결됐다.
즉, 대승의 유식학에서는 제7식 말나식을 의(意)라 하고, 제6식이 이 의(意)를 소의(所依)로 하므로 ‘의식(意識)’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그리고 유식학에서는 제6식까지를 표층의식이라 한다. 본심이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제6식의 뿌리가 되는 제7식인 말나식(末那識)을 새로이 설정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본능에 해당하는 자아의식(自我意識)이다.
초기불교에서는 6식까지만 있는 것을 봤으며, 유식학에서는 제7식 말나식(자아의식)을 상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 말나식은 제6식보다 한 단계 깊은 마음의 세계로서, 극히 이기적인 잠재의식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욕망을 가지는 이기적인 심리가 바로 제7식 말나식인 것이다.
그리고 제7식 말나식보다 더 깊은 잠재의식으로서 제8식인 아뢰야식(阿賴耶識, alaya-vijnana)을 더 상정한 것이다. 이처럼 유식학에서는 8식으로 세분화한 것이다.
이 제7식부터는 표층심리를 벗어나 심층심리, 잠재의식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제7식부터는 심층의식이라 한다. 6식까지는 표층의식, 제7식과 제8식은 심층의식인 것이다.
제8식 아뢰야식은 우리가 생전에 지은 행위의 결과인 업(業)의 저장소이다.
그래서 아뢰야식을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또 업을 씨앗처럼 품고 있기 때문에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
업(業)이란 과거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한 모든 것들을 말하는데, 이것이 우리 몸속에 입력된 것이 아뢰야식이다.
이 아뢰야식에 저장된 업이 어떤 계기로 움직여 일어나는 생각을 업식(業識)이라 한다. 예를 들면, 담배를 즐기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업이 돼 아뢰야식에 종자식으로 저장돼 있다가, 무슨 일로 흥분하면 담배 피우려는 욕망이 업식으로 발현돼 나타나서 담배를 피우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뢰야식은 우리들 일상의 습관, 버릇, 성향들을 의미하는데, 고정 불변한 것은 아니고 우리 마음작용에 의해 변하기도 하며, 더 심해질 수도 있고, 수행 정진에 의해 정화시킬 수도 있으며, 소멸도 된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알콜중독, 마약중독, 흡연중독, 변태성욕 등에 걸리는 것도 그러한 경험이 훈습돼 아뢰야식에 저장돼 있다가 업식을 통해 그러함을 자꾸 요구하게 되는 현상이다. 따라서 마음을 고쳐먹고 중독을 끊었다는 것은 아뢰야식에 저장된 업장(業障)을 씻어냈다, 녹여냈다, 업장이 소멸됐다는 말이다.
따라서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의 심신을 오염된 상태에서 청정한 상태로 질적 변화를 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수행이다.
즉, 수행을 통해서 아뢰야식 속에 있는 악한 종자를 남김없이 소멸시켜야 ― 정화시켜야 완성된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된 것을 깨달음을 얻었다, 득도했다, 해탈했다고 하는 것이다. 해탈이란 바로 아뢰야식에 저장된 악업을 완전히 씻어낸 상태를 말한다. 그렇게 해서 편안해진 상태를 열반이라 한다.
선행은 선종(善種, 선한 종자)을 낳고 다시 선행을 가져오지만, 악행은 악의 종자를 낳고 다시 악한 행동을 생산한다.
한번 훈습된 종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현행되는데, ―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데, 선을 쌓으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고, 악을 쌓으면 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악의 종자는 업장소멸을 위한 수행과정을 거치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고 반드시 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거듭 말하지만, 불교의 수행은 바로 아뢰야식에 저장된 악의 종자를 소멸해가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아뢰야식을 완전히 정화하는 것이 곧 해탈이다.
그런데 원래는 제8식까지만 있다고 했으나 후대에 제9식인 아마라식(Amala)의 단계가 있다고 하는 이론이 나타났다. 제9식 아마라식(阿摩羅識)을 백정식(白淨識) 혹은 무구식(無垢識)이라 한다.
제8식 아뢰야식엔 선⋅악의 종자가 다 저장된다. 그러데 그 중에서 선한 종자만 따라 떼서 제9식이라 한 것이다. 따라서 제9식은 완전히 깨끗한 식이므로 백정식(白淨識)이라 했다. 이 백정식이 제9식 아마라식(阿摩羅識)이다.
그런데 제9식 아마라식은 제8식 아뢰야식보다 더 깊은 의식으로서, 그 자리가 이른바 불성(佛性)으로서 부처님께만 갖추어진 식이다. 따라서 제9식이 곧 부처님의 식이다. 그러므로 일반중생은 불성에 접근하기 어려우므로 제9식이 있으나마나 해서 일반 중생을 대상으로 할 때는 제8식 아뢰야식까지만 논의하는 것이다.
----백정식(白淨識) - 즉 제9식 아마라식(阿摩羅識)의 성립----
제9식 아마라식을 암마라식 혹은 아말라식이라 음역하기도 하고, 무구식(無垢識), 진여식(鎭如識), 혹은 백정식(白淨識)이라 의역하기도 한다. 제8식 아뢰야식에는 선한 종자(善業)도 저장돼 있고, 악한 종자(惡業)도 저장돼 있다. 그런데 제8식 아뢰야식에 저장된 선업만으로 떼낸 상태를 제9식 아마라식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백정식이자, 반야(般若)의 지혜이며, 진여(眞如)이자, 해탈한 상태인 것이다.
중국 남북조시대 남조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진제(眞諦, Paramartha, Gunarata 499∼569) 계통의 섭론종(攝論宗)에서는 9식설을 주장했고, 당나라 때 현장(玄奘, 602-664) 계통의 법상종(法相宗)에서는 8식설을 주장했다. 섭론종의 9식설을 구유식이라 하고, 현장의 8식설을 신유식이라 한다.
신라 유식의 대가 문아(文雅), 즉 원측(圓測)은 신유식의 8식설을 취함으로써 섭론종에서 주장하는 제9 아마라식을 제8 아뢰야식의 정분(淨分)으로 이해했다. 즉, 제8식 아뢰야식의 깨끗하게 정화된 부분이 아마라식이란 것이다.
제8식 아뢰야식까지로 모든 식을 마무리한다는 주장은 아뢰야식 가운에 염(染)⋅정(淨), 곧 오염된 식과 청정한 식이 같이 아울러 있다. 그러니까 청정한 식, 즉 백정식(白淨識)의 요소가 아뢰야식 가운데 다 갖추어 있으니 새삼스레 무슨 필요로 9식설을 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9식설을 말하는 사람들은 분명히 오염된 식과 청청한 본래 식은 차이가 있으므로 마땅히 별도로 분리해서 따로 시설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제8식 아뢰야식은 완전히 악업의 저장소이고, 제9식 아마라식은 선업만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8식 중, 제8식인 아뢰야식이 미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깨끗해진 상태에 이른 것을 아마라식이라는 것이다. 아마라식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참나’를 의미하고, 전생과 이생을 연결하는 종자(種子, 산스크리트어 Bija)의 역할을 한다고 하며, 인간의식의 가장 저변에 있다고 한다.
제6식의 저변에는 제7식인 말나식이 있고, 그 7식에서 보다 깊이 들어가면 제8식인 아뢰야식이 있으며, 그 아뢰야식이 정화된 것이 아마라식인데, 이 아마라식이 이른바 불성(佛性)이어서 제9식이 곧 부처님의 경지라는 것이다.
<해심밀경(解深密經)> 같은 경전에서 이러한 제8식에 가려 있는 무명이 없어진 깨끗한 식을 상정(想定)해서, 제8식 외에 감추어진 식을 제9식 아마라식이라고 했다. 제9식이라고 해서 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은 반야(般若)이고, 해탈에 이른 심식으로서 8식이 성불하면 제9식 백정식이 되며, 제9식 백정식에 이르면 곧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아마라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8식은 모두 허망한 것이며, 제9식인 아마라식만이 진실한 것이라 한다. 즉 제8식인 아뢰야식이 미망(迷妄)을 버림으로써 청정상태에 이른 것이 제9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9식 아마라식은 일반 중생에게는 해당이 없는 것이다. 먹고 살기 바쁜 서민 대중이나, 아니면 이제 겨우 수행 정진하는 출가자들일진대 감히 부처님의 경지인 제9식이야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현장(玄奘) 등은 부처님 경지가 아닌 중생들을 가르침에 제8식까지만 논의해도 된다는 주장을 폈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출처] <백정식(白淨識) ― 제9식 아마라식(阿摩羅識)>|작성자 아미산
24-01-23
원정
이 답글은 제가 과거에 쓴 글과 중복되는 면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여원님을 위해서라도 총정리하여 자세히 쓰겠습니다. 언젠가는 여원님이 읽을 것을 기대하면서....
24-01-23
원정
공(空)에 머무는 사람이 한 점의 오류도 없이 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 자리(?)는 ‘무분별지’인데, 생각으로(책으로) 어떻게 공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성철스님은 임종게에서 왜 ‘한평생 남녀무리를 속였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을까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도 하지요. 이는 듣는 사람의 역량에 따라 맞추다 보면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이라도 전혀 다른 각도의 해법을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의사나 약사가 환자들의 병에 따라서 다른 약을 처방하듯이 대하는 사람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표현된 해법을 절대적인 것처럼 집착하면 큰 오류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석가모니는 “나는 뗏목의 비유로써, 교법을 배워 그 뜻을 안 후에는 버려야 할 것이지 결코 거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였다. 너희들은 이 뗏목처럼 내가 말한 교법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물며 법 아닌 것이야 말할 것 있겠느냐.”(남전 중부 사유경)라고 말씀하셨고, 열반에 드실 때에도 “나는 한마디도 말한바 없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철스님도 자신의 설법에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에서 위 임종게를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을 남겨 기억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해서 말이라는 방편을 활용하셨다는 뜻일 것입니다.
24-01-23
원정
팃낫한 스님의 책들은 제가 오래전에 여원님에게 소개시켜 드린 책이고, 사실 저도 불교 입문 초기에는 그분의 책을 통하여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몸이 나라고 생각하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팃낫한 스님의 책들은 매우 좋은 방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제가 ‘공=연기=무상=무아’가 잘못된 이론이라고 생각할까요? 당연히 일반 대중들에게는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여원님에게만은 더 이상 그 방편을 집착하지 말라는 것뿐입니다.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합니다.
한편, 이 책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듣기에 따라서 거슬리는 내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올려주신 글 188쪽에는 “여기서 수행은 온종일 공을 통찰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문장은, 문리해석을 해보면, 깨닫지 못한 수행자의 입장에서 공을 통찰한다는 것(에고가 공을 통찰한다는 것)인데, 이는 제 경험과 명확히 다릅니다. 제 경험으로는 통찰한다는 생각을 포함하여 모든 생각과 몸을 쉬면 쉴수록 공은 좀 더 ‘저절로’ 선명하게 ‘(피동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에고가 쉬면 원래 있던 공이 저절로 드러납니다. 책의 내용과는 정반대입니다. 굳이 수행이 필요하다면, 생각의 힘을 빼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공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수동적으로) 깨달은 자들의 법문을 듣는 것이 정말로 좋습니다. 에고가 뭔가 하면 할수록 에고는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공부에 좀 더 진도가 나간 사람들(분별하는 생각이 고통의 원인임을 철저히 느낀 사람들)을 위한 방편으로는 제가 올린 글(피올라마음학교장의 강의)이 팃낫한 스님의 책(방편)보다는 좀 더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空에 대하여, 피올라마음학교장의 강의가 팃낫한 스님의 책의 설명보다 좀 더 섬세하다고 생각합니다.
24-01-23
원정
위 팃낫한 스님의 책에 “공은 비존재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연기, 무상 그리고 무아를 뜻하는 말이다.”라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다른 존재들과 분리되어 독자적인 실체성을 가진 나가 존재한다고 믿는 일반 대중들을 위해서는 매우 좋은 방편입니다. 여원님은 물론 ‘그런 나는 없다’는 정도의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견해를 꼭 잡고서 그 게 불교의 전부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정말로 불교를 이해하고 있다’는 ‘아상이 더욱 공고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을 여원님이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결과는 석가모니의 대기설법 또는 방편설법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온 결과이기도 합니다. 쥐를 잡는데,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고양이이면 어떻겠습니까? 제 입장에서는 여원님이 ‘공=연기=무상=무아’의 이론에 지나치게 접착하고 있어 보이기에 ‘그것만이 불교가 아니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것도 생각이다. 그 생각을 지나치게 믿고 집착하면 에고가(아상이) 강화될 뿐이다. 여원님은 그 생각이 불교라고 믿고 있는데, 그것은 불법도 법이 아니라는 석가모니의 진의를 놓친 것이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24-01-23
원정
한편, 공을 체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연기=무상=무아’의 생각을 가지게 되면, 다른 존재들과 한 몸으로 살려고 하기에 일정 부분 삶에 도움이 됩니다. 많은 대중들이, 비록 공을 체험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팃낫한 스님의 책을 어느 정도 소화한다면 이 지구는 살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제 경험으로는 그러한 이해가 되더라도 작은 도전들에 대해서는 도움이 되지만, 제 에고가 감내하기 힘든 정도의 큰 고통들에 대해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도 모르게 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저를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그런데, 공에 어느 정도 계합되면, 생각이 일어났을 때 저절로 그 생각이 빨리 알아차려지게 되고, 그러면 그 일어난 생각에서 덜 끌려가게 됩니다. 첫 번째 화살(일어난 생각)은 어쩔 수 없지만, 2번 째, 3번 째, 4번째 화살은 피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들이 계속하여 윤회하지요. 그게 심해지면 정신병자가 되는 것이고요.
공에 계합된 자는 고통이 오면 피신할 섬(공)이 있습니다. 여원님에게는 그 섬(공)이 없어 보입니다. 다만, 여원님에게는 ‘생각의 섬, 생각으로 이 모든 현실은 空해’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수차례 여원님이 느끼는 공을 설명해 보라고 말했을 때 어설프더라도 설명하였을 것입니다. 뭔가를 아는 사람은(또는 체험한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 설명해주게 마련이니까요. 여원님처럼 ‘공은 연기야’하고 끝내지 않습니다. 비록 그 설명이 구질구질해도 상대방 입장에서 다양한 방편을 동원하여 설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인지상정입니다. ‘공’은 분명히 체험할 수 있는데, 왜 체험했다면 그 체험을 설명하지 않겠습니까? 이 부분은 여원님이 속고 있는 부분입니다. 여원님은 제가 보기에 체험이 없는데, 그 부분에 대한 대답을 제가 수차례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원님이 답변을 회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를 알고 있다는 여원님의 에고가 여원님의 에고도 모르게 진실을 막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24-01-23
원정
그리고 이 팃낫한 스님의 책에서는 단계적인 집중을 말하는데, 제 입장에서는 너무 복잡한 방편입니다. 전 선불교와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이 팃낫한 스님의 책의 단계적인 집중 방편이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24-01-23
원정
마음공부와 관련하여, 제 글이 약 3년 전과 지금은 차이가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주관적 착각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저로서는 체험으로 몇가지 확신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이것(공)을 구하려는 수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별하는 마음이 쉬어지는 것이 핵심이구나. 분별하는 마음이 이것의 체험을 막고 있구나. 모모님은 "전..상상도 못하는 경지라....서요."라는 생각이 막고 있어요.
둘째로, 보통 사람들은 분별하는 마음이 쉬지를 못하는구나. 심지어는 생각의 노예로 살고 있음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구나.
셋째로, 이것(공)은 경계체험이 아니구나. 대상이 없는 체험이구나.
넷째로, 이것(공)은 누구에게나 있고, 심지어는 누구나 사용하고 있구나.
다섯번째로, 일정한 분기점을 넘어서면 이것(공)은 후퇴할 수가 없겠구나.
여섯번째로, 이것을 체험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 있겠구나.
일곱번째로, 이것을 체험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는구나.
어떻게 분별하는 마음이 쉬어질 수 있을까????
24-01-23
원정
참고로, 나를 에고로 한정하면, 당연히 무아입니다.
에고는 착각이고 환상이니까요.
제 입장에서도 '연기=무상=무아'라는 개념이 잘 작동합니다.
팃낫한 스님의 책은 나를 에고에 비중을 두고(보통 대중을 상대로 책을 썼을 것이므로) 쓰여졌을 가능성도 있어요.
그런데, 공(앎)을 나의 본질이라고 생각해 볼때 피올라마음학교장의 '공'에 대한 강의(① 내지 ⑥은 모두 생각이 만든 내용)가 더 유용해 보입니다.
24-01-23
모모
우선..사진으로 찍힌 글이라 읽기 힘들었을텐데..정성껏 읽고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9식에 대한건 제가 모르지만..
우선..6식으로 판단하여 아는척 한 것에 대해선 사과드립니다.
제가. 머물렀던 자리는..주시자로서의. 6식 었으니까요.
그 자리에서의 ㆍ전념ㆍ 을. 통해
신비체험을 여러번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경계체험이닌 하고 말하는 것도 알지만..
제겐 나름대로 감사한 체험이라...
그걸로 논하고싶진 않습니다.
그리고..
쓰느라..힘들었을텐데..여러가지 자상한 설명에 대해서도 감사드립니다.^^
24-01-23
원정
제 견해도 잡지 마시고 지금 원정은 이 정도 느끼고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생각해 주세요.
24-01-23
모모
네.!
감사합니다.^^
24-01-23
원정
이게 모모님에게 도움이 될 것도 같습니다.
제가 처음에 공을 느꼈을 때, 저의 공은 에너지장(氣)과 앎이 한덩어리였습니다. 오히려 에너지장을 공으로 느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에너지장을 느끼는 자(앎)이 있었습니다.
그 앎은 생각으로는 알 수 없어요.
물론 저는 지금도 에너지장을 느끼고 있어요.
저는 모모님이 경계체험을 많이 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그 경계체험을 하였을 때 분명히 공도 함께 드러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경계체험을 한 사람이 공을 체험하기 쉬운 것이에요.
그 경계체험을 한 사실을 알아채는 자(앎)가 있어요. 실체는 없지만....
한편, 그 경계체험을 소중히 여기는 자는 에고에요.
그 경계체험을 이젠 놓아주세요.
24-01-23
모모
네. 에너지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걸 느끼는자도 분명있었구요.
경계체험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어는 정도 알고 있습니다..
여원님이 그 보는자. 경험하는자 가 식..이라는걸 제대로 깨우쳐 주셨지요.^^
두분덕에..제가 정말 제대로...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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