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반짝이는 별을 보거든-20

03-10-15 지구인 921
임재현/은하가족 - http://column.daum.net/galaxyfamily

서양에는 우주가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격을 갖춘 창조자가 있어서 그 양반의 설계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이같은 창조자의 역할을 하는 존재를 데미우르고스라고 불렀으며 유대인들도 창세기에 보듯이 조물주가 세상과 만물을 지어냈다고 상정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스스로 존재한 우주, 스스로 조직화하는 우주를 생각했을 뿐 특정한 인격신을 생각지는 않았다. 물론 巫歌에 보면 미륵님이 천지를 지어냈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이는 주류는 아니니 여기서는 논하지 않기로 한다.

그런데 우주의 생성에 특정한 신이 개입했느냐의 여부만 다를 뿐 우주를 잡아돌리는 커다란 법칙에 관해서는 서양이나 동양이나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서양신비주의 문헌을 보면 신이 우주를 만든 후 만들어놓은 우주에 일정한 법칙을 부여했는데 그것은 지극히 단순하다고 묘사하고 있으며 동양에서도 우주가 변화하는 법칙을 몇 가지의 단순한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그레이스 케언즈박사는 자신의 놀라운 저서인 역사철학의 끝에서 동서양의 모든 신화 종교 예술 건축 등을 연구해 보면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을 박사는 pars pro toto로 집약해 내었다. 라틴어로 짐작되는 이 수수께끼 같은 구절은 부분은 전체를 반영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pars가 부분을 뜻하며 toto는 전체 pro는 반영하다의 뜻이 아닐까 하는데 이 같은 논리는 동양의 주역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주역 계사에 보면 근취이저신하고 원취이저물이라는 말이 나온다.

필자는 이 양자는 표현만 다를 뿐 같은 의미를 가진 구절로 본다. 필자는 대학시절에 위상기하학을 다룬 책에서 부동점에 대한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난다. 부동점이란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점, 그러니까 사람 머리에서도 정수리 부분의 머리털이 없는 부분이 바로 부동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수채구멍으로 물이 빠져나갈 때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보면 중간에 구멍이 뻥 뚫린 부분이 나오는데 이 또한 부동점이다. 또한 태풍이 강력하게 발달할 때 나타나는 태풍의 눈 부분도 부동점이며 은하계 가운데에 있다는 보이드 또한 부동점이다.

우주에 중심이 있다고 한다면 - 필자는 공간적인 개념에 국한되지 않는 중심점이 있다고 믿는다 - 만물은 그 중심점을 끼고 회전할 것이다. 그런데 그 엄청난 힘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중심에 어떠한 물리적인 실체가 있다기 보다는 텅비었다고 상정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수채구멍의 중심, 사람 머리가마의 중심, 태풍의 중심, 은하계의 중심처럼 말이다. 필자가 중심의 예를 든 것은 부분은 전체를 반영한다는 서양의 논리와 근취이저신하고 원취이저물하라는 동양의 철언을 증명하기 위함인데 이밖에도 더 많은 예가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필자가 생각하는 또 한가지 우주를 잡아돌리는 법칙은 바로 희소성의 법칙이다. 이는 물론 경제학에서 말하는 그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희소성의 법칙은 사회구성원들에 비해 자원이 풍족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필자는 그런 의미가 아닌 다른 의미로 그것을 사용할 것이며 그것도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할 것이다.

필자는 언젠가 해우소에 느긋하게 앉아 뒤를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야 지금까지 내가 뒤 본 것을 합쳐놓으면 내 몸무게의 수수십배가 넘겠구나... 수수십배만 되랴? 일년에 쌀 한 가마니씩 해치운다고 하면 물경 서른 가마니 정도를 먹었을테고 그밖에 이것저것 반찬 같은 것을 합하면 엄청난 양을 먹어치웠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먹어치워도 고작 키 170에 몸무게 50 수킬로에 지나지 않는 체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동안 먹은 것은 전부 다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음식이 일단 체내에 들어가면 그 음식 속에 포함된 극히 소량의 성분만 몸이 흡수하고 나머지는 모두 채외로 버린다. 소화작용과 배설작용을 통해 자신을 유지시켜 나가는 몸이라는 놈은 까탈스럽기 그지없어 자연이 준 음식이라는 선물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중 극히 소량의 일부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체외로 버려지는 부분은 쓸모없다는 것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자연계에는 즉 전체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선택된다는 희소성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껏 먹어온 많은 음식물 중에서도 극히 소량만 몸에 의해 흡수되고 나머지는 버려지게 되지만 버려지는 그 나머지도 전혀 불필요한 부분은 아니라는 점만 기억하자. 나머지는 다음에...

/////////

가만히 생각해보면 인간이라는 종은 대단한 폭식자요 약탈자다. 현재 꼬리나라가 지구상 전 에너지 자원의 40%를 소비하는 것처럼 1500만에서 2000만에 달하는 생물종 중 인간이라는 종은 지구상 전 에너지 자원의 반 이상을 약탈해가고 있다. 꼬리나라가 지들 살기 위해 에너지자원을 약탈해가는 것처럼 인간도 종의 영속을 위해 다른 생물종들의 에너지를 약탈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에게 에너지자원을 약탈당한 생물종은 멸종되고 말 것인즉 이 또한 개벽의 일종인 생물개벽이다. 환경론자들이 생태계 파괴 운운하는 것도 실상은 이러한 생물개벽을 두고 하는 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