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륙삼국사에 부쩍 관심이 커지면서 풀고 싶은 숙제가 생긴 것이 한민족의 활동무대가 언제부터 어떤 과정을 거쳐 반도로 축소되었는가이다. 앞글에서 소개했던 유튜브채널 '책보고'에 그것을 다룬 영상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다. 이것만 봐서는 다소 미흡하긴 한데 관련자료를 다각적으로 찾아보다보니 어느정도 정리가 되는 느낌이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고려말까지도 대륙이 주 활동무대였던듯 하고 (40년간 대몽항쟁을 벌이며 임시왕궁이었던 지역은 강화도가 아니라 산동반도 인근)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조선개국은 한민족의 활동무대를 반도로 축소시킨 결정적 사건이었다.
링크한 영상에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는 댓글들이 적지않이 보이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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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지역도 고려영토 같고 북송은 중국에 의해 만들어진게 아닐까 생각됨 북송 때문에 고려영토관련 기록과 안맞음 북송과 고려 이 두나라가 특정기간 동안 영토위치가 겹침
어느 블로그에서 태조 왕건이 5대10국 시대 후당에서 활동하여 조조와 사마의처럼 황제에 버금가는 실세였다고 합니다. 대주자사, 청주절도사, 운주절도사(왕건이 견훤의 운주성을 함락시킴. 운주의 위치가 대륙?한반도?) 임치왕, 동평왕(임치, 동평 모두 산동반도의 지명) 한왕(韓王 삼한 땅을 다스린 군주?) 황제의 시중까지 봉해져 일개 제후가 많은 작위를 받았습니다.
중국 사서에선 산서 대주(대군,대현,대읍) 하북 청주의 왕건립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송나라 기록에는 왕건이 청주(하북?산동?한반도?)에서 즉위했다고 나옵니다. 중국 오악 중 하나로 유명한 숭산(등봉시)은 중국어 발음으로는 송산에 가깝게 들리더
군요. 그래서인지 고려의 송악을 송산, 신숭산, 숭악, 대숭산 등 다양하게 표기하고 있습니다.
왕건이 후당의 대주자사 왕건립과 동일인물일까 그냥 위인을 닮고 싶어 이름을 바꾸었을까. 북한의 김일성 가짜설도 있지만(본명이 김성주, 항일독립운동가 김일성 행세를 했다는 설)
후고구려의 궁예와 진왕 이극용(하동절도사, 아들 이존욱이 후당을 건국하고 태조로 추존) 둘 다 애꾸눈...이극용 별명이 독안룡, 두 인물의 일화가 비슷해서 동일인물이 아니라면 둘 중 하나가 가공인물이라는 주장이 있음.(나관중은 실존했던 동탁의 시녀를 모티브로 삼아 소설 삼국지에서 초선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왕윤의 양녀로 각색했음)
전촉왕이 고려 태조라는 주장은 허구...거리가 너무 멀고(명나라 역참로 기록으로 북경에서 성도까지 빨라야 145일 걸림) 전촉왕이 사망한 해 918년에 고려 태조가 즉위했죠.
북송과 고려의 관계는 한나라와 위나라를 생각하면 조금 이해가 되는 듯...조조가 위공이 되어 업성을 수도로 삼아 위나라를 세웁니다. 형식상 위나라가 한나라의 종속국이 되지만 실제로는 한나라 황제를 허수아비처럼 조종했고, 태조 왕건은 조조와 달리 해상호족이어서 중원에 자리잡은 황제를 인정하되 대륙의 해안지역을(중국 역사서는 송나라 영토라고 기록하겠지만) 다스렸을 것 같네요.
송나라 태종이 고려 성종에 보낸 친선문서에 常安百濟之民 永茂長淮之族 백제인들(후백제?일본?대만?) 편안케 하고 회하의 종족(구이九夷 중 하나인 회이족?)은 오래 번성하기 바란다는 그런 의미...
후당 명종이 고려 태조에 보낸 문서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長淮茂族 漲海雄蕃 장회(長淮)가 장강과 회하를 말하는 듯...혹자는 황하의 범람으로 물길이 연결된 회하(淮河)의 다른 지류를 지칭하거나 회수(淮水)의 상류 일대 또는 발원지를 의미한다고도 하는데 현재 안휘성 합비 북쪽에 회남(淮南)과 회북(淮北)이라는 도시들이 존재합니다.
창해(漲海)는 남해의 옛 이름...당시 '남쪽 바다'가 어딘지 불확실하고(교주에 남해군, 남해현이라는 지명이 있지만 고대 백월족의 지배영역이었음) 우리 한자음으로 동해(발해)의 다른 명칭인 창해(滄海)와 같은데 중국어로 漲(넘칠 창) 발음이 장(長, 張)에 더 가까운 듯 합니다. 넓은 의미로 장강 아니면 동정호, 파양호 등 내륙의 호수들을 지칭하는 말??
웅번(雄蕃)이라는 표현이 일개 변방국이 아니라 중원 왕조의 울타리가 되는 강력한 제후국..한족들 입장에서 고려를 춘추오패(주나라 천자를 지키며 제후들의 맹주 역할을 하는 나라)와 비슷한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 같네요.
왕건이 견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왕건은 스스로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에 비유하고 신라왕을 살해한 견훤을 왕망과 동탁에 비유했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왕망은 원래 성이 제나라의 전(田)씨로 제북왕 전안의 후손입니다. 한무제에 투항해 산동 일대의 평주후가 된, 우거왕의 부하장수 왕겹(왕협)이 있는데 그는 위만조선의 귀족이나 후사가 없어 대가 끊겼습니다.
요나라 흥종이 고려 문종에게 보낸 책봉문서에도 삼수(三陲 세 변방?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나 삼한)을 다스리며 오패(五覇)를 이어받았다고 표현합니다.(粤自分啓三陲 紹興五覇)
춘추시대 패자가 된 다섯 나라는 제나라, 진(晋)나라,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가 해당되는데 목공의 진(秦)나라와 양공의 송나라를 패자로 언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려는 영토면에서 고구려보다 신라 혹은 백제와 많이 닮았을 것. '해동천자'가 다스리는 나라답게 해외에 백제 담로와 같은 거점들을 많이 설치했을지 모릅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가톨릭 국가이나 명목상 비잔티움 제국의 신하국이 되어 달마티아 공작이라는 작위를 얻었습니다. 아드리아 해 건너편 있는 달마티아 지방은 동로마 황제의 영토로 슬라브 해적들의 근거지가 되었으나 베네치아 해군이 해적을 토벌하여 황제에게 영유권을 인정받았죠.
(유튜브 댓글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