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포도원 일군과 품삯0

글수정
03-08-08 바람 915

포도원 일군과 품삯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
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
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 육시와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시에도 나기보니 섰는 사
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셨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
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삵을 주라 하니 제 십일시
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 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
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
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않았
느냐 네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같이 주는 것이 내 몫이니라 내 것을 가지
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다 보느냐 이와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16)

포도원에 들여 보낸 품군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저가 하
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삼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
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 육시와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시에도 나기보니 섰는 사
람들이 또 있는지라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셨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포도원은 천국을 상징하여 표현한 것이며 또한 우리의 마음을 상징합니다. 품군은 '잃어버린 아
들의 비유'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의 모습은 하나님이 일군(지
혜)을 잠을 깨자마자 바로 뭔가를 구하는 듯한 모습이며, 하루 한 데나리온을 약속함은 수고한 대가만큼 일정한 보수(깨
달음.기쁨등)를 지급함을 말씀합니다.
또 삼시에 나가 봄은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무료하게 놀고 있는 사람(생각)들을 보고 또한 약
속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어떤 수고스러운 일을 하게 함입니다.
또 육시, 구시, 십일시에 나가 동일하게 놀고 있는 사람들을 써서 포도원(마음속)으로 들여보내
수고하게 합니다. 여기서의 품군은 우리들의 각 생각(느낌)을 의인화한 것으로 하루의 삶이라고 하는 순간안에서 살면서 그때 그때 마다 우리들의 내면에서 떠오르면서 또한 온갖 수고를 하는 온갖 생각(느낌)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 자신, 주변 사람, 온갖 것에 대하여 온갖 생각(행위)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
에 어떤 때는 이러한 생각(느낌), 저런 때는 저러한 생각(느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을 품군을 만난
것으로, 한 데나리온을 약속함은 뭔가 대가(소원)를 바라는 것들이 그러한 생각(느낌)들에 있음을
말하며, 일을 함은 그러한 생각(느낌)들이 여러 가지의 형태로서 내 안에서 온갖 수고를 하는 모
습인 것입니다.

청지기와 품군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삵을 주라 하니"
이 비유에서는 청지기와 품군의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청지기는 매
순간 그 모든 것을 자기자신으로서 인식하는 지금 이 순간의 깨여 있는 '나'를 말씀합니다. 품군은 오늘 하루동안 혹은 이 순간에 나의 내면에서 생각(느낌,인식,감각,행위)등 온갖 형태로서 일시적으로 수고하는 모든 것들을 말씀합니다.
즉 청지기는 매 순간마다의 나 자신, 다시 말하여 모든 생각,느낌,행위들을 자기자신(주체성)으로서 인식하면서, 그 모든 것들을 자기안에서 각성시켜 소통시키는 그 자체를 말씀합니다. 그런 반면 품군은 청지기가 매 순간마다 나 자신, 모든 생각,느낌,행위들을 자기자신(주체성)으로서, 바르게 인식하게 하는데 있어 온갖 수고를 하고 있는 생각,느낌,행위들의 그 하나하나을
말씀합니다. 즉 청지기는 온갖 생각(느낌,행위)들의 그 하나하나를 이해하면서 동시에 원활하게 흘러가도록 하는 그 자체를 말씀하며, 품군은 청지기가 그러한 생각(느낌,행위)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시킬 수 있도록 생각(느낌,행위)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양하게 수고하는 모습들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 동안, 혹은 이 순간 청지기가 그러한 모든 것들을 잘 이해하고 파악하고 통합하여 원활하게 소통시킬 수 있도록
하게끔 하는 것, 그러한 온갖 종류들의 그 하나하나가 바로 품군의 모습으로서 의인화하여 표현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의사와 같다면, 청지기는 의사속에 있는 지혜(능력)와 같은 것이며,
품군은 약과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약(생각)의 하나하나가 품군이며, 이를 지혜롭게 처방하는 것은 청지기이며, 이를 지혜롭게 처
방할 수 있도록 가르치시며 여러가지 것들을 제공하여 주신 분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약(생각)이 기가막히게 좋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청지기가 사람,때,상황에 맞게
끔 약을 처방하여 써야지, 아무렇게나 쓰다간 오히려 해를 가져올 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
리들의 생각(느낌,행위)들이 바로 이와같은 것입니다.
즉 생각(느낌,행위)속에서 온갖 수고를 하는 품군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온갖
것들을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쓰며, 어떻게 소통시키며, 어떻게 사라지게 하는가 등등.. 청지기
에게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입니다..
생각(느낌,행위)의 하나하나가 품군이며, 생각(느낌,행위)의 그 하나하나를 바르게 이해하여 즉시 즉시 잘 흘러가도록 처방하여 주는 것이 청지기이며, 생각(느낌,행위)이전에 이미 존재하시고 가르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에너지와 정보들의 장속에서 수시로 생각(느낌,감각,인식,행위)등의 형태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품군이며, 그러한 그 모든 것들에 대하여 깨어있음으로서 바르게 인식(이해)하며 살아가는 그 자체가 청지기이며, 그 모든 것들을 초월하여
이미 함께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삵을 주라 하니"
저물매는 어떠한 한 순간, 혹은 지금 이순간을 말씀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순간 순간 마다 품군
의 들의 요구에 응답하여 적절하게 대가(품삯)를 지불하여 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의 착각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 받거늘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 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
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
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네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같이 주는 것이 내 몫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다 보느냐 이와같이 나중 된 자
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16)

이 말씀을 보게 되면 나중에 일한 품군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고, 하루종일 일한 품군은 더 받을 줄 알고 기
대하고 있다고 똑같이 주자 원망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서 발생을 하여 온갖 수고를 하는 온갖 종류의 생각(행위)들 가운데서 자기 자신 스스로가 참으
로 많은 수고를 하였다고 하면서 뭔가를 많이 기대하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어떤 귀중한 깨달음을 얻고자 온갖 수고를 한다고 칩시다. 그
러면 너무도 당연히 우리안에 있는 모든 생각(마음)들이 총동원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
는 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저런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이런 때는 또 다른 생
각이 떠오르고는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들안에서 온갖 수고를 하는 것이 바로 품군의 모습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명심하여야 할 점은 생각(느낌)은 인간 자체를 위하여 있는 것이지, 생각(느낌)
그 자체를 위하여서 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 안에 있는 그 모든 생각(느
낌)들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내는 상태인 반면, 생각(느낌)의 그 하나하나는 나의 하수인(품군)
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온갖 수고를 하였다고 하는 한 생각(느낌)이 떠올라, 다른 한 생각(느낌)보다
더 많은 요구를 한다면, 그러한 생각들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각(느낌)들을 위한 것으로 남용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약간의 대가(기쁨)를 줄수는 있으되, 지나친 요구는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느낌)들이 뭔가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듯하면 그러한 모든 것들을 바르게 이해하여 그러한 생각(느낌)들의 요구를 그냥 무시하든가, 내 버려두든가, 그냥 지나가든가 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일을 좋아 하는 사람은 쉬는 것보다는 뭔가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한다고 하는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쉬면 일을 하여야만 된다고 하는 생각에 쏠
려 편히 쉬지를 못합니다. 또한 무조건 덮어놓고 쉬기만 하는 사람은 일을 두려워하여 아무것
도 할 생각을 못합니다. 일을 하던 쉬든 그러한 모든 것을 나 자신이 스스로 알아서, 또는 내부에서 발현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일을 하든지 쉬든지 하여야 하는데, 생각(느낌)에 끌려서 일을 하거나 쉬거
나 하는 어리석음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데만 죽도록 고생하면서 거기서 뭔가 만족을 얻은 품군(생각,느낌)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차차 그렇게 일을 함으로서 오는 만족을 채우려고 하는 그러한 생각(느낌)들을 자꾸만 떠올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냥 편히 쉬는데서 오는 만족은 모르고, 일을 하는데서 오는 만족감만을 얻어낼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순간 자꾸만 뭔가를 해야만 한다고 하는 생각(느낌)들이 자기자신을 몰아간 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때
그 순간 그러한 생각(느낌)들의 요구에 응하지 말고, 그냥 쉬든지, 지나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미운 생각이 순간 떠올랐다고 칩시다. 그러면 왜 미운생각이 떠오르는 것입니까? 미운생각을 함으로서
나 자신의 보호를 위한 어떤 만족감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아! 그래 한 생각이 나 자신의 보호를 위해 한 순간 떠올랐구나. 고맙다. 이 미운생각아'하면서 그냥 그 생각(느낌)을 흘려보내면 되는 것입니다.
되면 되는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그렇게 하라는 것이지요.


먼저와 나중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다 보느냐 이와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나중에 일한 품군들은 대가(깨달음,은혜.기쁨)가 주어지면 즉시 만족하여 또한 얼마 후에는 자연
스럽게 사라지거나 없어지거나 하는 그러한 생각(느낌)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일한 품군들은 수고로 인하여 대가(깨달음,은혜,기쁨)가 주어지면 그것에 만족하지 아니하고 더 많
은 것을 요구하는 모습, 얼마후에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머리처럼 들
어붙어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하는 생각(느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어떻게 됩니까? 나중 품군과 같은 생각은 대가가 주어지면 만족하고 그냥 지나
가거나 흘러가거나 사라지거나 하니 자연히 있는 모습 그대로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원하는
그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품군과 같은 생각은 뭔가 자꾸만 대가를 바라는 욕심
적인 생각이 되니 결국은 욕심적이고 집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너무도 당연히 하
나님께서 원하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즉 뭔가 대가를 바라고 하는 생각에 사로 잡히면 나중에는 대가가 나오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
의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요 수고로 인하여 대가가 주어지면 만족하며 살뿐, 더 이상 바랄 것
도 없고, 더 이상 안바랄 것도 없는 그냥 그렇게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면 그렇게 그렇
게 원래 모습 그대로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먼저가 되려는 생각도 없고 나중이 되려는 생
각도 없이 그냥 그렇게 평범한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생각은 머리(지혜,깨달음,구원,체험)가 되려고 하는 생각(느낌)에 이끌리어 자꾸만 뭔가를
더 얻으려 하다가 나중에는 꼬리가 된 것이요. 나중 생각은 머리가 되려는 꼬리가 되려는 생각
도 없이 살다가 어느날 수고(말씀묵상,기도)의 대가로 문득 어떤 지혜(깨달음.체험)을 얻게 되면
지극히 만족하며, 또한 바람처럼 지나가면서 있는 그대로의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즉 수고 속에서 뭔가 지극히 작은 것이 얻어지면 즉시 만족하며, 또한 잊어버리며 그렇게 그렇
게 매일매일의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나중 품군(생각,느낌)의 모습인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내 안에 어떤 좋다고 하는 생각(느낌)이나 또는 좋치 않다고 하는 생각(느낌)이 떠올랐을 경우,
그러한 생각(느낌)들은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닙니다.
그냥 생각(느낌)일 뿐입니다. 우리 자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발생현상인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알고, '아! 그래, 너희들이 내 안에서 이렇게 온갖 수고를 하고 있구나'하면서 그러한 생각(느낌)들이 내 안에서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냥 흘러가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은 저절로 흐르게 되어 있으니까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모든 것들은 저절로 흐르도록 그렇게 되여있다.
그러나 인간은 저절로 흐르는 것 가운데서 좋은 것이라고 보여지는 것은 막아서 자기 것으로 취하고, 나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은 길을 돌려서 다른 길로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필히 자연스러운 흐름이 깨어지고 나중에는 이상하게 되여지는 것이지요.

보이는 일 보이지 않는 일
청지기는 지금 현재의 시각에서 그 모든 것을 이해하며 체득하며 관리하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
로 살아가는 보이는 일군을 말합니다. 즉 내 자신이 깨닫고 느끼고 행하며 사는 것을 자기자신(주체적)으
로 인식하며 사는 보여지는 일군이 청지기입니다. 그러나 품군은 내 안에서 보이지 않
게 일하는 일군입니다. 수시로 내 안에 들락 날락하면서 무수한 수고를 하는 수많은 날품팔
이 일군들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생동안에는 아마도 엄청나게 많은 무수한 품군들이 우리안
에 들락날락 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역시 무수한 품군들이 우리안에 들락날락하
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품군들을 요구를 선용하여 기쁨을 얻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그러한 품
군들의 요구에 휘말리어 고통을 격기도 하였습니다.
혹 지금 이 순간도 그렇고 앞으로도 또한 그럴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
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20-21)
요셉의 형들속에 있었던 그 생각(행위)들은 바로 품군과 같은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그와같
은 생각(행위)들로 인하여 요셉은 괴로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닫고 보니 그러
한 것 조차도 하나님은 선용하사 모든 생명을 구원케하는 길로 인도하엿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자기가(청지기)가 당신들(품군들의 생각)과 당신들의 자녀(품군들의 행위)를
거느리면서 잘 살겠다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요셉의 고백인 것입니다.

즉 요셉은 형들속에 있는 그와 같은 생각(행위)들이 자기를 괴롭힌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지극히 좋은 것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요셉은 어떻게 그러한 것을 깨닫
게 되었습니까? 형들(품군)속에 있는 그 생각(행위)들을 선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
였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괴롭히는 것을 괴롭히는 것으로 보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모든 것
들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는 그 모든 섭리를 깊이 깨달았기에 그는 이러한 간곡한
말로 오히려 그들을 위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 승리의 최후비결은 바로 우리들안에 매일 수도 없이 들락날락 하는 무수한 품군
(생각,느낌.깨달음.체험)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이해하고 선용하느냐 이것이 관건인 것입니다.

그런데 뭔 특별히 그러한 것들을 위해서 뭔가를 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우리들안에서 그러한 것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그냥 살면됩니다.
우리 자신이 의식하면 의식하는 대로, 의식하지 못하면 못하는대로 우리안에 이미 그러한 에너지(기)의 흐름이 있음을 알고 때로 기도하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생각(느낌)이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행위들이 수고하면 수고하는 대로, 수고하지 않으면 수고하지 않는대로, 뭔가가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그렇게 사시라는 것이지요.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렇게 사시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생각,느낌,행위들에 걸리는 바가 없으니 처음도 나중도 아닌 원래 그 모습 그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처음이 될지 나중이 될런지는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맡길 따름일뿐이죠.
이상 포도원의 일군과 삯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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