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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
깨여있음에 대하여
1
05-05-08
바람
885
오직 지금의 이 순간만이 살아 있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죽은 것이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허구이다. 따라서 하루의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지금의 이 순간을 살아 가는 것이요, 순간으로서 영원을 산다고 하는 것은 매순간이 오직 유일한 매 순간으로 다가올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매 순간이 오직 유일한 매 순간으로서 다가와질 수 있도록 하게 하는 능력은 오직 늘 깨여있음으로서 스스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순간은 언제나 항상 이 순간일 뿐이기 때문에, 순간은 늘어나지도 줄지도 않는다. 한 찰라일 뿐이다. 따라서 순간이 늘어나 영원이 되는 것, 혹은 순간을 많이 살아 그러한 순간순간들이 서로 연결되어 영원이 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그냥 이 순간을 산다고 해서 어떤 사람에게 영원으로 나아가는 길이 저절로 열리는 것만도 아닌 것이다.
(때를 따라 저절로 되는 것이 있기는 한데, 그냥 태평치고 사는 것만이 전부 다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순간이 곧 영원이 되어지게 하는 것은 매 순간 순간이 나외에 하나도 다르지 않음으로서 연합작용이 일으켜 지게 될 때에 스스로 가능케 되는 것이다.
밤하늘의 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냥 '아! 아름답구나'하는 것은 그러한 느낌일 뿐이지, 나 자신과 온전한 연합작용을 일으킨 것은 아닌 것입니다. 나 따로, 별 따로 서로 떨어져 있는 공간에서 내 자신이 그냥 그러한 느낌을 일으킨 것 뿐인 것입니다.
그러면 연합작용이란 무엇인가? 그 별을 보는 그 순간 문득, 나 자신이 거기에 이미 닿아져 있는 그 상태에 다름이 아님으로서 서로가 에너지를 주고 받는 그 일체적 상태에 온전히 거하여 지는 변화적 상태, 이것이 연합작용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속에 너무도 생생이 살아 있는 또 다른 새로운 나의 발견이 이루어 지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나로서 그 모든 하나님을 만나는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순간으로서 곧 영원에 다아진 것이므로,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 도무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시공간의 영역의 것에 접목이 되어, 그 나라의 것, 별세계의 것으로 살아가게 되니, 나의 몸이 점점 그 나라의 체제에 맞는 몸의 구조로 탈바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이 지구상에서 70-80년을 산 것이 아니라, 그 모든 나라의 체제적 상태로 살게 되는 것이니, 하루를 살되 만년을 산 것외에 다름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것은 그것이 곧 매 순간으로서, 일체적 연합작용이 일어나야 스스로 가능케 되는 것이니, 이렇게 되는 것은 오직 늘 깨여있음외에 다른 방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늘 깨여 있게 될 때에, 스스로 그러한 기회가 오게 되는 것이고, 그러면 천지가 개벽하듯이, 내가 딛고 있는 땅이 뿌리채 흔들리듯이, 하늘의 계명성으로 화하여
번개처럼 날아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침에 일어나서, 밤늦게 자기까지 의식이 늘 깨여있음으로서 가득차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곧 바로 온통 팽평하게 빈틈하나 없이 꽉 차 있는 의식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이 밤늦게 잘 때까지 계속 지속이 됩니다. 하루종일 조금의 빈틈도 없이 꽉조이도록 팽팽하게 차 있는 어떠한 상태인데, 조금도 피곤하지 않고 늘 활발하게 온갖 것들이 무수하게 부딪치는 듯한 중압감 비슷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늘 깨여있고 싶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20년이 넘도록 엄청나게 퍼부어 대는 아내의 잔소리를 매일같이 반복해서 듣다 보니 그러한 모든 것들을 인내와 기도, 묵상으로서 견디는 과정속에서, 늘 깨여있지 아니하면, 그 모든 상황들을 도무지 견뎌낼 수가 없었기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늘 깨여있는 것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는, 이러한 상태가 될 수 밖에는 없게 된 것이지요. 수도 없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를 무수히 반복하는 과정을 통하여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이 하루종일 늘 깨여있음을 살다가 보면, 문득 문득 의문이 수도 없이 일어나고, 사물의 이치가 퍼떡퍼떡 알아차려지고, 즉즉 기쁨이 수도 없이 일어나고는 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갑자기 나도 모르는 새에, 그 모든 현상들이 나 외에 하나도 다름이 아닌 연합적 일치의 작용이 일어납니다. 느닷없이 도무지 예측 불가능하게 갑자기 그러한 현상이 찾아와 순수의 극치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면 거기서는 도무지 미치지 않고는 안되는 그러한 상황이 되게 되는데, 그러한 상황속에서 잠시 말없이 그냥 있어주게 되면 또한 감쪽같이 그러한 현상들이 사라지고는 합니다.
도덕경 21장에 나오는 노자의 체험과 비슷한 것이라고나 할까요.
통하여 그 덕의 세계에 다다라 그 세계의 것으로 입혀짐(거듭남)에 있어
오직 도를 따를 뿐이로다
도의 실체는 있는 듯 없는 듯 오직 황홀할 뿐이니
황홀하고 황홀한 가운데 그 안에 형상이 있고
황홀하고 황홀한 가운데 그 안에 만물이 있도다
심오하고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생명의 본질인
정기가 서려있으니
그 정기가 지극히 진실하고
그 안에 성실함이 있도다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 사라지지 않고
만물의 근원을 통솔하는 도다
나 어찌 만물의 근원의 실상을 알 수 있으리요?
오직 도를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로다.
(도덕경 21장)
"그런즉 깨여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리라"(마25:13)
우리는 앞날이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한치 앞도 헤아릴 수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 과거의 늪과 미래의 허구에 빠지지 않는 길, 순간으로서 영원으로 나아가는 길은 늘 깨여있음 외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평안하게 사는 사람들을 볼 때,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과연 진정 평안하게 사는 것일까?하고 말이지요. 그것도 그들 나름대로의 자유이니 구태여 책망할 것은 없음니다만, 어떤 때는 문득 문득 가엽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기자신을 알지 못하는 그 늪이 보임입니다.
저는 한동안 북한백성들을 위해 기도한 적이 있었는데, 문득 하나님이 저에게 그러시더군요. '너는 북한백성들이 불쌍하다고 보느냐?" '예'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러시더군요.
'내가 보기엔 남한백성들이 더 불쌍하게 보인다. 그들이 누리고 있는 그 평안이 내가 보기엔 사망의 늪외에 다름이 아니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사람의 그 아들)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8:20)
그 모든 동식물과 사람들은 평안하다 하여 거기서 쉬었으되, 예수는 하루종일 번뇌가 일어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자기의 머리를 의탁할 곳이 없었느니라. 그러니 어찌하겠느냐, 오직 깨여있음으로 나를 기다려야 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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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11
원정
그냥 산다는 말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옳을 수도 있고 그들 수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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