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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번뇌와 마주했던 수행법<성(性)이 수행의 도구일 수 있다>
6
05-12-24
원정
1,329
내가 번뇌와 마주했던 수행법<성(性)이 수행의 도구일 수 있다>
name : 지나다가 수정 삭제
모든 수행의 귀결점은 번뇌를 끊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번뇌가 끊어지면 마음이 평화로워 진다. 장휘용 교수님은 명상록에서
'진정한 깨달음이란 행복을 추구하는 수행자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도달하는 지복(至福)의 경지가 아니라 행복과 불행의 구분 그 자체를 뛰어 넘는 경지임을 이야기합니다.'
라고 말씀 하셨지만, 그것 역시 행·불행의 구분을 넘었을 때 더 무한한 평화가 온다는 것으로 해석 될 수 있다고 본다.
번뇌는 평화스럽지 않은 상태, 즉 불편함이다.
불편함은 인간을 자유롭지 않다고 느끼게 하고, 심하면 괴로움을 수반한다. 괴로움, 즉 고(苦: 여기서 말하는 고는 부자유를 포함한 인간의 모든 편치 않은 마음을 의미한다)는 인간이 인생을 살면서 피해갈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다.
모든 수행이나 종교는 운명적으로 맞닥뜨리게 되는 고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궁극적인 지혜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내가 고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하고싶다. 그리고 가능한 설명은 짧게, 또 아주 쉽게 나의 경험을 말하고 싶다. (고에서 벗어났다고 하니 아마 좀 황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요즘은 정보화시대가 되어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는 아무 때나 쉽게 얻을 수 있고, 웬만한 지식들은 상식화 되어있다. 그리고 글이 어렵고 길면 읽히지가 않는다. 가능한 한 정말 쉽게 말하려 한다.
내가 과거와 달라진 점을 간단하게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1. 성적인 충동에서 해방되었다.
2. 마음을 들여다보면 무한히 평안하다.
3. 의식이 웬만하면 늘 성성하게 드러나 있다.
내가 아마 처음부터 이런 상태로 태어났더라면 남들도 모두 나와 같다고, 아마도 엄청난 착각을 하고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난 과거에 지금과 달랐다.
과거에, 위에 적은 세 가지를 인간의 삶 속에서 가능하다고 누군가가 말했다면 난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 가지를 아무리 음미해 보아도 사실이다.
그럼 과거의 상태(늘 성적인 충동에 시달렸으며, 마음은 늘 채워지지 않은, 혹은 온갖 감정으로 복잡했고, 의식은 한번도 내가 무얼 하고 사는지 알아채지 못하고 살던)에서 지금처럼 바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라보기'였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바라보기의 생활화' 라고 나 할까?
우선 첫 번째 성적 충동부터 이야기 해 볼까 한다.
내가 최초에 무엇에 깊이 빠져본 경험은 초등학교에 들어가 글을 알게 된 후였다. 그것은 만화였다. 거의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난 만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다음 또 빠져 본 것이 바둑, 그리고 그 다음은 술과 담배, 또 잠깐이었지만 화투나 카드 정도?
무언가에 빠져 있을 때, 생각으로 아무리 빠져나오려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위에 열거한 것들은 어느 정도 푹 빠지고 나면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술과 담배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했지만.
그러나 일관되게 그 빠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성'이다.
위에서 내가, 최초에 무엇엔 가 깊이 빠져본 것이 만화라고 했지만, 사실 내가 성을 알게 된 것은 만화보다 먼저였다. 초등학교 입학 전, 우연히 이불 속에서 나의 성기를 가지고 놀다가 거기에 묘한 쾌감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후로 난 그 성기가 주는 쾌감에 평생을 푹 빠져 살아왔다.
성적인 충동...
이거 남자라면, 도처에 널려있는 유혹에 '난 자유스러워'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없다. 가만히 있어도 불쑥 불쑥 생각나 도저히 어찌하질 못해 없는 돈과 시간 짜내는 것이 남자들이다.
그러나, 성적인 본능을 모두 채우면서는 사실 세상살이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그칠 줄 모르는 성적 욕망이 [사라하의 노래]에서 말한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라, 거기에 진리가 있다'
라는 라즈니쉬의 말(사실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붓다 이다)과 조우했을 때 무한히 평화스런 영적 변화로 바뀌게 되었다.
그것은 처음엔 성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마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난 이 삶의 갇혀있는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었다.
그리고 깨달음이란 것이 궁금했었다.
그런데 그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가 '오르가즘 순간에 자신을 들여다 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처음 오르가즘 순간에 자신을 들여다보았을 때...
아! 그것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온몸을 강렬하게 휩싸며 밀려오는 극도의 쾌감이 몰아칠 때, 그 순간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 기분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정말 엉망이었다! 쾌감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처음 해보고 나서 좀 망서려 졌다. 이걸 계속 해야 하나? 그러나 깨달음에 대한 욕망은 그것보다 훨씬 이상이었다. 몇 번을 해보고 나니 그런 대로 할 만 했고,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내 몸의 쾌락의 즐거움을 그런 대로 같이 즐길 수 있었다.
몇 년을 지나고 나니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더하여 성적 오르가즘 자체가 그렇게 내가 빠져 헤맬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약간 편안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 되니까 현실적으로 달라지는 게 있었다. 여자에 관심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연유는 이렇다.
난 고속버스를 타거나 기차를 탔을 때 옆 좌석에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있으면 그냥 침묵한 채 가기가 좀 힘들었다. 그렇다고 숫기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말을 걸을라치면 어찌나 힘든지 망설이고, 그러다 보면 내릴 때가 되는데(운 좋으면 먼저 그 여자가 껌 주면서 말을 건다), 언젠가부터 정말 신경 안 쓰고 마음 편하게 여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은 당시로선 놀라운 변화였다. 난 성(여자?)에서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다.
적당한 운동을 찾다가 단전호흡을 하게 되었다. 자연히 단전호흡에 관한 서적도 읽다 보니까 정액의 사출이 축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알게 되었다.
그 뒤로 관계는 하더라도 사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오르가즘 때마다 들여다 본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참을 만 했다). 그 후로 난 섹스를 하면서도 사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실수로 놓친 적이 몇 번 있지만 그럴 땐 그냥 그대로 좋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생활이 해를 지나고 몇 년이 지나면서 내면에서 차 오르는 성적 욕망이 다른 곳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물론 축기는 잘되어서 단전은 자리를 잘 잡고 건강은 정말 날로 좋아지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좀 의아해지는 부분이 있다. 의사들은 억지로 사정을 억제하면 성 기능에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또 항간엔 용불용설이라고 해서 사용을 안 하면 기능이 저하된다고도 한다.
나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기능은 오히려 날로 좋아져 나이를 먹어 가면서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또 하나, 오르가즘을 제외한 다른 감각이 발달되어 오히려 성생활은 더 만족스러워 졌다는 것이다.
보통의 남자들은 절정에만 생각이 가 있어 애무나 삽입 과정, 삽입 후의 과정 등에 별로 관심이 없고 사정 후에는 급작히 떨어지는 체력으로 인하여 만사 귀찮아지게 되나, 사정을 안하고 보니 다른 감각들이 살아나고 체력이 소모가 안되어 아무리 성생활의 횟수가 많더라도 하등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절정의 감정만 조금 절제하면 얻는 게 훨씬 더 많다는 장점이 있었다.
비슷한 비유로. 인생에 목적이 없으면 훨씬 더 편안하다는 것을 나중에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나의 성이 여성화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많은 여성들이 오르가즘이 아니라도 애무나 사랑의 감정에 만족하고 있다는 글을 본 것 같다.
문제는 심리적으로 억압된 성 충동이 다른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맨 처음 다가온 것이, 평소에 관심도 없었던 시중의 삼류 야한 영화들이 보고 싶어져서 그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열심히 보고 다녔다. 다만 영화를 보러 다니면서 바라보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진 애썼다.
당시에 느낀 게 있다. 똑같이 벗기는 삼류 영화라도 한국영화는 너무 유치했다. 지금은 기억도 없지만 몇 개의 외국 영화는 정말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그럴 때마다 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물론 매번 바라보기가 성공한 것은 아니다. 처음엔 오히려 실패가 더 많았을 것이다.
바라보는 힘도 점점 늘어가는 것 같았다. 중요한 장면에서 영화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려면 약간 주의를 하면서 영화 내내 조심을 하고 있어야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것들이 모두 명상이고 수련이었다.
웬만큼 영화를 보고 나자 어느 때부터 영화가 점점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꼭 보고 싶었는데 보다 보면 너무 시시해서 영화 중간에 그만 나오게 되는 것이 몇 번 되더니 그 다음부터는 발을 끊게 되었다.
그러나 성적인 충동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길고도 먼 길이 기다라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벗어난다는 개념조차 없었다. 컴퓨터에서 언제나 접할 수 있는 포르노 사이트, 채팅, 심지어는 야설이라고 해서 야한 이야기가 올라와 있는 사이트도 알게 되었다. 다만, 억지로 보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진 않았다. 아마 억제하려고 노력했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꾸준히 빠져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이런 것들이 별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포르노를 보아도 내 몸은 반응이 없었다. 그러기 훨씬 전부터 이미 내 몸은 술이 떡이 되도록 취해도 성의 충동이 일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외부의 성의 충동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느낌이 왔다. 새벽에 잠이 깨었을 때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충동은 섹스를 강력히 요구하는 충동은 아니었다. 그리고 혼자서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어느 왕비(지금 기억이 안 난다)가 스님의 도를 시험하기 위하여 시녀로 하여금 목욕을 시키게 했었는데, 두 스님 중 한 스님이 목욕을 시키는 중간에 그것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일화가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과거에 그 글을 읽었을 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성이란 일반적으로 금기시 하거나 억제할 것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사실이 그렇다. 나는 애초부터 금기시하거나 억제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라보기 명상'을 위하여 어떻게 시작한 것이 그냥 습관이 되어 버리고, 호흡 수련 중 사정을 절제하려다가 그저 참을 만 하다보니 참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성에서 해방된 채, 어쩌면 이제야 편하게 아무 때나 줄길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것이 무슨 자랑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되리라는 기대도 없었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이 상태가 심리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걸 느낀다.
그것은 성의 해방이, 그것 자체만이 아니라, 마음에 해방감을 주고 평안을 더해 주었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아마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믈게 남성 호르몬이 많은 여성이 아니라면 여성들은 남성들처럼 성의 충동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들었다. 또 나이 들어 멘스가 없는 여성들은 성에서 해방되는 지 모르겠다. 하지만 남성들은 아마도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은 성의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모양이다.
지나다가, 어느 분이 '바라보기' 가 구닥다리라고 해서 참견한 것이 좀 미안했고, 수행법이야 나름대로 무궁하겠지만 내가 그래도 체험으로 알고 있는 '바라보기 명상' 의 효과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들이 있을까 안타까웠으며, 혹시라도, 수행에 관심있는 분들이 드나들면서 정말로 이젠 효과를 잃어버린 수행법으로 폄하될까 걱정되는 마음에서 시작한 글이 길어져 버렸다.
두 번째의 마음의 평화와, 세 번째 의식의 드러남에 대하여는 다음에 이어서 쓰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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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24
원정
한 번 꼬옥 읽어보세요.
내가 번뇌와 마주했던 수행법, 내가 번뇌와 마주했던 수행법 그 이후는
마음이나 명상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꼬옥 추천하고 싶은 글입니다.
06-12-16
마음
공감됩니다. '바라보기'='지켜봄'이라고 이름지어 연습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성적으로도 활용하게 되었을까 신기합니다.
06-12-17
원정
잘 지내셨어요?^^
06-12-17
마음
네. 보고싶은 원정님! 진짜 보고싶은데...
06-12-17
원정
언제 교대역을 지나치시면 한 번 들르세요.
교대역 8번출구 로이어즈타워 602호 부광합동법률사무소 서승필 실장 찾으시면 되고요.
사무실 전화번호는 02-584-8998번 입니다.
식사시간 전에 미리 전화주시면 식사대접하겠습니다.
06-12-18
마음
네~ 올해가 가기전에 한 번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보통 12시가 점심시간이니까 혹 찾아뵈는 날에는 두어시간 전에 전화드릴께요. 선약이 있을지도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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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24
원정
생각¨
내가 번뇌와 마주했던 수행법<바라보기와의 만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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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24
원정
생각¨
내가 번뇌와 마주했던 수행법<성(性)이 수행의 도구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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