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자 바라보기

RE>답변이 좀 늦었습니다.3

05-12-25 지나다가 1,513
의식은 3단계의 상태로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것은 경험적인 측면에서의 저의 판단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사고를 하고 있습니다만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는 사고가 없이 외부로 모든 사고가 쏠려있습니다. 가끔씩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긴 하지만 그 순간이 너무 짧게 스쳐 지나가서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스스로 자신을 객관화하여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현재의 의식과 자신을 보고 있는 또 하나의 의식을 인식함으로써 자신의 의식이 분리됨을 느끼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자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아채고 있는 순간이 길게 유지되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를 저는 ‘드러난 의식’ 혹은 ‘깨어있는 의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첫 번째 단계와 두 번째 단계에서는 끊임없이 번뇌에 시달리며 세 번째 단계에서는 해방감을 느끼게 됩니다. 첫 번째 단계의 번뇌는 자신이 번뇌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면서 인생을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의 번뇌는 의식의 분리에서 오는 근본적인 고(苦)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의식이 분열되어 자기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자신이 결코 되지 못하도록 저주받는 것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에오도 이 점에 대해서 ‘자아란 관조자로서의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다. 주체성을 자각했을 때 지금까지 무의식적이었던 평화의 세계가 돌변하여 세계와 자기사이에 일어나는 단절을 경험한다. 그리고 공허한 각성 속으로 들어간다. 관조자를 봄으로써 위화감과 고(苦)가 발생 한다’라고 표현하였더군요.

두 번째 단계에서 볼 때 자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지만 세 번째 단계에서 보았을 때 그 자신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나는 다름 아닌 하나의 생각(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따라서 님이 질문하신 보는 자와 보이는 자는 님이 두 번째 단계에 있으시다면 둘 다 의지가 있는 것으로 판단이 되시겠지만 사실은 보는 자는 지금 나를 그렇게 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의 유식학에서도 이를 변계소집이라 하여 잘못 헤아려 집착된 상태라고 하는 것을 이 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자는 근본적인 궁금함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궁금함을 키워나가는 수행의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결국에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리 이야기 해주면 마치 화두를 해석해 버리면 그 힘을 잃어버리듯 궁금함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스승들이 그 사실을 이야기 해주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제가 바라보는 자를 극도로 주시하였을 때 의식이 드러났던 것과 위빠사나는 사실 수행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던, 자신이 무얼 하는지 알아채고, 그 알아 챈 순간을 더 유지하려 노력한다는 것은 위빠나사의 수행방법이고 제가 해 왔던 바라보기는 위빠사나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말씀드립니다.

위빠사나에서 알아챈다는 것은 바로 의식을 드러난 상태로 몰아가는 것이고, 바라보기는 바라보는 자를 주시함으로써 그 응축된 에너지가 언젠가 바라보는 자의 힘을 녹여버리면서 의식이 저절로 드러나게 유도하는 것 같습니다.

‘이 뭣고?’ 화두법은 바라보는 자가 무엇이냐는 강한 의문을 일으켜 그 의문을 점점 키워나가다가 언젠가 그 의문이 깨질 때 의식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며, ‘나는 누구인가?’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가슴에 잡히는 답답함을 주시하여 그 답답함이 녹을 때 의식이 드러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두 가지를 거의 동시에 해왔던 것을 이번에 곰곰이 생각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법에도 몸의 느낌을 주시하는 것이 있어서 제가 바라보기와 흡사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바라보기는 위빠사나 수행법과 화두법의 중간쯤에 있다고 해야겠군요. 양쪽의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질문을 주셔서 이번에 정리가 되게 하여주신 것, 진정 감사드립니다.

  • 05-12-28 지나다가
    반가웠습니다.
    원정님에게 그 어떤 이정표도 필요없는 날이 반드시 오기를 기원합니다.
  • 05-12-28 원정
    감사합니다.
    지나가다님의 삶은 제 삶의 이정표가 될 것 같습니다.
  • 06-12-22 마음
    3년전 쯤에 공허함을 수일간 겪어야 했는데 계속 바라봄으로써 해소가 되었던 기억입니다. 요즘 가슴이 얼마나 답답하고 시린지 모른답니다. 아니 가슴보다는 가슴에서 시작해서 명치 밑에까지라고 해야겠습니다. 어이구 답답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