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

열린 문 닫힌 문1

06-12-26 바람 1,315

"사십일이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 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 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족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 들이고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 놓으매 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 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

였더라 육백 일년 정월 곧 그 달 일일에 지면에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 물이 걷혔더니 이월 이십 칠일에 땅이 말랐더라"(창8:6:14)

 

 

셈:  우주는 열려져 있는 세계입니까?   아니면 닫혀져 있는 세계입니까?

노아:    보여지는 현상들을 오관으로서 '그렇다'라고 할때,  그 영으로서는 그것을 이름하여 닫혀져

           있는 세계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영으로 이미 다 연합되어져 있음으로서 다 들어와

           있음이 보여질때,   그것을 이름하여 열린 세계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주의 실상은 열려져 있는 세계도 아니고, 닫혀져 있는 세계도 아니라 할 수 있

            지.     다만 그 순간 그렇게 보이는 광각,시각의 정도에 따라 그렇게 보이는 것(열린세계)

           이 되기도 하고,  막히어 안보이는 것(닫힌세계)이 되기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셈:   우주는 어떤 때에 닫히게 되며,  어떤때는 열리게 되는 것입니까?

노아:   그 모든 생명체들이 존재할 수 있음은,   그것이 막으로서 그 안에 정보와 에너지가 가두어져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지.        즉 막이 있기 때문에 비로서 그안에 뭔가를 가두어 담아 놓을

         수가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막을 통하여 생명체들의 잉태와 소멸이 가능케 되

         는 것이라  할 수 있지.

 

         그런데 이러한 막에 구멍(문)이 뚤리어 그 이전의 것에 접목이 되어지면,    기존의 그 막에

         존재해 있었던 것들의 기능상실이 오면서, 새로운 막(옷)의 것으로서 입히어지게 되는데,  그

         렇게 되면,      태초부터 이미 그렇게 되어져 있었던 그 세계의 것과 연합을 이루게 되는 것이

        라 할 수 있지.

 

셈:    막에 어떻게 그 기능상실오며 또한 그것을 통하여 연합(접목)이 이루어 질 수가 있게 되는 것

        입니까?

노아:   우주는 막을 통하여 볼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니까,     그 막의 한계내의 것으로 만 본다면 그

       한계내에서는 그것이 전부 다 인것 처럼 보여지니까,    그것이 실상으로, 실제적 기능으로서

       인식이 되어질 수 밖에는 없는 것이지,

 

       그러나 그 막에 구멍(문)이 뚫리면서,    그 이전의 것으로 돌아가게 될때에,   기존의식체계에

       입히어져 있던 것들이 떨어져(벗겨져) 나가면서,   동시에 태초부터 이미 있어왔던 그 이전의

      실상으로서 갈아 입히어지게 되면,   기존의 것은 자동적으로 그 힘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고,

       그 실상의 것으로서 새로이 연합이 되어지게 되는 것이지.  

           

 

셈:   그렇다고 한다면,    그 모든 생명체의 이치는 기존막에 구멍이 뚫리면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새

       로운 것으로 갈아 입히어 지는 그 과정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노아:   ^^.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     막이 있음으로서 그 구멍이 닫히게 되니,   개체로서의 순수

        성, 독자성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고,     막에 구멍이 뚤려 그 구멍사이로 다른 차원의 것이

        접목되어짐으로서,    그 모든 전체와 공존을 할 수 있음이 가능케 되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

        지.

 

셈:    그렇다고 한다면 그 어떤 누구라 할지라도 기존의 막에 구멍이 뚤리게 되면서,  동시에 그 이

        전의 상태로 돌아가 그 실상의 것으로 다 거듭나게 된다면,   그 모든 전체와 더불어 공존을

        하게 될터인데,     왜 어떤 이들은 그것이 가능하고,  어떤 이들은 그것이 가능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까?

노아:  어떤 이들은 왜 그것이 가능케 되고, 어떤 이들은 왜 그것이 가능하지 못하게 되냐고 물어

          보는 것이냐?

          글쎄???     나로서는 오히려 어떻게 그러한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도통 납득하기가 어

          려운 듯 하구나.        이미 다 되어진 그 자체인데,      그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거

          늘...    

 

          애야!   잘 들어라,     우주만물 그 자체로는,  우주만물 그 자체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니

          라,          오직 그 자체로서 충만한 그 자체인데,    그 어찌 그 법에서,    어떤 이들은 가능

          하고, 어떤 이들은 불가능한 그러한 것이 있을 수가 있겠느냐?

 

          일체로서 충만하고,  일체로서 텅빈 그 자체이어늘,  거기에 어찌 헛된 비교분별심이 존재할

         수가 있다는 것인지?     

 

 

 셈:    '???'

노아:   그 세계로서 보면 그 모든 것이,  일체로서 무아니라,   일체로서 텅비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없기에,  도리어 그 모든 것으로 충만한 그 자체이니라.

          너도 없고 나도 없고,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가능도 없고 불가능도 없어,   그 어떠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미 태초이자 곧 나중으로서 온통 하나인데,    어머어마한 일체적 그

          공력으로서 되어져 나오는 것일 뿐인데,    거기에 그 어찌 비교분별심이 털끝하나라도 끼

          어 들어가 있겠는가?

 

셈:   '아하!'  알겠습니다.   제가 어리석은 한 생각을 미치 알아차리지를 못하고,     제 생각을

        '그렇다'라고 한 것,  즉 망상이 떠올랐을때,  그 허망함을 바로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군요.

노아:  그렇다고 한다면 한가지 묻겠다.    너로서는 왜 그 망상을 바로 알아차리지를 못하였느냐?

 

셈:   글쎄요.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노아:    그 생각이 떠오른 그 순간,  그 생각이 그 텅빔(진공)에서 그대로 되어져 나온 것이냐?

             아니면,    아직 들깨인 그 습(틀)에서 나온 것이냐?  그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런

             데 이것은 말로 설명하기가 좀 뭣하니,     그냥 그 자체에게 맡기기로 하고...

 

셈:    위 말씀에서 나오는 까마귀와 비둘기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노아:   까마귀는 닫힌세계,  비둘기는 열린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까마귀는 점으로서 그 한계를 보는 세계요,     비둘기는 그 무한으로 무수히 나아감으로

          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그 영원으로서 떠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지.

 

          까마귀는 다람쥐가 체바퀴속에서 그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밤낮 고안에서만 돌고 돌듯

          이,  까만점으로 상징되는 이 세상에 갇히어 사는 형국이라면(윤회),   비둘기는 그 순수와

          그 귀의와 그 파동으로서 텅비어져,   그 세계의 것으로 날마다 탈바꿈되어 날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

 

          그 세계가 열리어 짐은,    그 입자(말씀)로서 입히어 지고,  그 파동(성령)으로서 날아가는

          것인데,    그 입자로서 입히어 질때는 날아가는 것이 안보이고,   그 파동으로 날아갈때는 또

          한 그 입히어짐이 안보이게 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하늘나라는 여기있다(입자) 저기있다(파동)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너희 가운데에 있느니라(그 사이로서 텅빈 충만) 하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 06-12-26 마음
    바람님의 글, 묵상하면서 이해가 되어지면서 읽혀집니다. 적어도 내안에서는 그렇습니다. 분별심은 에고의 반응이겠지요. 고통도 쾌락도 에고의 반응이겠지요. 그러면 에고(사고)의 작용이 아닌 일체를 넘어선 일체선(기쁨)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크리슈나무르티는 전체로 보라고 하는데 주의력이 흐트러져 지속이 되질 않는다고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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