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에 대한 단상2

06-09-23 원정 1,166
 

인터넷에서 ‘십일조’에 대하여 검색을 해보니, ‘십일조’는 “고대영어로 '10분의 1'이라는 뜻의 teogothian에서 유래” 되었고, “그리스도교 교회가 채택한 관습으로서, 평신도들이 수입 가운데 1/10을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바치는 것”이라 합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제 나름대로 해석해보면 ‘십일조’의 정수는 ‘나눔’과 ‘재투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십일조’의 정수는 하느님의 다른 피조물들이 정신적 또는 물질적으로 가난하다면 근원적으로 하느님의 것인 나의 정신적 또는 물질적 소득의 일부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는 ‘나눔’의 정신에 있다 할 것입니다.


[(창세기 14:20) 아브라함이 그 얻은 것에서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레위기 27:30) 땅의 10분의 1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10분의 1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둘째로 ‘십일조’의 정수는 ‘재투자’에 있다 할 것입니다.


물리학의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심리학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될 수 있고, 불가에서의 ‘연기의 법칙(인과관계)’도 알고 보면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라고 생각됩니다.


내가 베풀면 어떤 방식으로든지 반드시 그 보답이 있게 마련입니다.


작용에 대한 반작용이지요.


그리고 어떤 때는 내가 베푼 것보다도 보답이 훨씬 큰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저는 ‘십일조’는 물질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할 수 있고, 직접 물질을 나누는 방법뿐만이 아니라  용역을 통하여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예술가가 무료공연을 하는 것, 자장면집 주인이 소년가장에게 주말에 자장면을 나누어 주는 것, 무료봉사 등을 통하여서도 ‘십일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소득이 없는 자도 얼마든지 ‘십일조’를 행할 수 있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서로 ‘십일조’를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료법률상담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것이 제가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이고, 제가 행하는 ‘십일조’의 방식입니다.





지혜로운 십일조를 통하여 각자의 인생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06-09-24 김춘봉
    십일조의 취지가 나눔에서 비롯되었다는 원정님의 말씀에 공감을 합니다.
    그런데 나눔의 의미가 자기 PR이나
    또 다른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장려되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본래 우리네 심성은
    아무리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 06-09-24 원정
    김춘봉님의 말씀에 100% 동감합니다.
    그래서 불가에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而生其心)'이란 말(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이 있고(금강경),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말도 있으며, 성경에서도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라는 말이 있지요.

    나눔의 취지가 자기 피알이나 다른 이익창출의 수단으로 장려되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김춘봉님의 말씀과 일치되는 말들이지요.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이런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보시에 대하여 자선에 대하여 생색을 내거나 겉으로 드러내면 그 보시나 자선의 의미가 퇴색이 되지요.
    또한 받은 사람도 준 사람에게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게 되지요.
    그러나 드러내지 않고 보시를 하는 사람의 행동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이 사회에 향기를 뿌리는 것 같아요.
    우선 보시를 하는 자의 내면을 변화시켜 이러한 내면의 변화가 얼굴에 드러나고 이러한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호감으로 다가서는 것 같습니다.
    또한 내가 누구에게 나눔을 하는데 있어서 드러내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드러나는 것이 이치인 것 같습니다.
    바지 주머니 속의 송곳이 바지를 뚫고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이듯이...
    그리하여 그 나눔이 더 돋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국 '십일조'가 궁국적으로는 '재투자'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나를 위해 '십일조'를 행하는 것이니 결국 내세울 일이 없지요.
    알고보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하는 일인데, 뭐 내세울 일이 있겠어요.
    표현방식은 다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느낌이나 김춘봉님이 말씀하시는 취지는 조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음에 글을 쓸 때는 언어선택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춘봉님과 같이 생각하실 분들이 있겠다 싶었지만 그냥 '재투자'라는 말을 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