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궁금하다151

21-07-02 원정 1,076

나는 궁금하다 .

 

성경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원수’라는 단어가 너무나 많이 등장하는데 놀랐다.

원수를 상정해 놓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느낌......나의 마음에는 그 당시 원수가 그렇게 많이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불교에 접하기 전까지 윤회를 몰랐다.

일단 태어나면 살다가 그냥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이 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란다. 윤회를 한단다.

불교 수행자들은 윤회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불교 신도들에게도 윤회를 두려워하도록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윤회라는 관점도 없었고, 윤회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윤회를 두려워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윤회가 두려워지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윤회의 존재여부를 떠나서 만약 그 것이 존재한다면 왜 수행자일수록 윤회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삶이 ‘고통(苦痛’)이라는 관점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왜 윤회가 두렵단 말인가?

윤회를 두려워한다는 그 자체가 에고의 관점이 아닌가?

그렇게 나약한 수행자의 체험에서 나온 말들을 우리는 무조건 믿어야만 한다는 것인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나 네안데르탈인을 현생에 데려오면 그들은 행복할까?

불교에서 인정하고 있는 참나의 관점에서 살펴볼 때, 2차원 평면에서 사는 뱀보다 3차원 공간에서 사는 사람이 더 고차원적으로 산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

나는 팝송이 좋은데 오폐라가 더 차원이 높은 음악이라고 모두 인정한다고 하여 그 지겨운 오폐라를 나는 계속 들어야 하는 것인가?

결국 차원이라는 것은 에고의 관점이 아닐까?

만생만물은 모두 각자의 우주에서 사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성자들이 나왔지만 이 지구에는 왜 정의가 없고 약육강식만 존재하는가?

깨달음이란 기술직 직업군들의 재능처럼 하나의 삶의 기술(지혜로운 기술)을 하나 더 장착하는 것은 아닐까?  

수행자들은 진리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진리란 자신들이 깨달은 약간의 결과에 자신들의 에고의 관점을 버무려 설교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내 관점에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명상은 새로운 지혜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그 이외의 나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에 네게 ‘주시자’가 다가왔다.

나는 그를 모른다. 그가 궁금하다. 그래서 그를 알고 싶다.

다만, 그를 주시하여 신선이 되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이후에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그 자리에서는 어떠한 통찰이 나올지 궁금하다. 그 것은 주시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위 궁금함을 모두 내려놓고 주시자를 주시하기로 결심했다. 주시자에게 맡기고 살기로 결심했다.

  • 21-07-02 지나다가
    정말 제대로 들어오셔서 제가 아주 좋아 죽습니다.^^

    바로 저의 모습을 보는 듯하니까요!

    현각스님의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읽고 너무도 나하고 닮아 이방인이지만 꼭 동생같다는 생각을 했는데(나보다 10년 아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우찌우찌 만나게도 됐지요. 두어 마디 주고 받았지만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습니다^^ 당시 현각은 TV에서 자신이 오직 행만 남은 경지를 설파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경전도, 어떤 내 안에 떠오르는 생각도, 어떤 최고 수행자의 조언도 모두 도움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이것이 무엇일꼬 집중할 때 어떻게 변하는지도 자신의 몫입니다.^^
  • 21-07-02 원정
    제가 99% 결심하면 지나다가님은 지나가시다가 1%를 채우셔서 제가 물러서지도 못하게 만드시네요.^^
    '줄탁동시'가 떠오릅니다.^^
  • 21-07-06 모모
    이것이 무엇일꼬?

    이제 지나가다님이 하시는 말씀이 좀 이해가 됩니다.
    저도 정확히는 알지 못해도  돌아보니..늘  그런 마음으로 살아왔던거 같네요.
    두분의 말씀 들으며 많이 돌아봤습니다.
    멋진분들이랑 같이 이야기 나누니..
    저도 같이 붕~
    너무 좋습니다.^^
  • 21-07-06 모모
    며칠전 고양시를 다녀왔습니다.
    길연 칸투 라는 분을 만나봤는데..
    인터넷 검색하니 나오네요.
    류시화님이랑 친구고..오쇼의 글들 많이 번역하신 손민규님이랑도 매우 친하시고..
    어쨋든 나이74세인가..그렇다더군요.
    지인이 소개시켜주어 같이 신나게 떠들며 춤추며 .너무 재밌는 시간 보냈습니다.
    아주 동안이고 어린애 같으면서
    심안이 발달된 분인지..

    저보고 아테네여신 같은 스타일이라 하셔서 웃었습니다.
     체격부터 남성적인 면이 있어..
    인정..하면서도..
    아테네 하면 지혜의 여신인데..
    감히 저랑 빗대어 말해주니..
    부담지수가 팍 올라가면서도 영광스럽기도 하더군요.^^

    영안이 발달된 사람인지..
    제 얼굴색 말투. 움직임..등을 보며
    제가 신장기능이 안좋아 허리가 많이 아플거라고 알아맞추더군요.

    치료를 부탁할까 하다가 시간상 관두었습니다.

    어쨋든 너무 좋은분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신나게 놀다 왔습니다.^^
  • 21-07-08 지나다가
    류시화님의 번역서 <사라하의 노래>를 읽고 라즈니쉬가 소개한

    "자신을 바라보라. 거기에 진리가 있다."

    라는 이 한 구절에 제가 속절없이 빠지게 됐지요.^^ 

    남달리 외로움과 공허감에 휘둘리던 제가 몇개월 후 가슴에 가득찬 평화를 경험했고 그 평화의 감정은 비스무리한 형태로 지금도 늘 함께하지만 외로움, 공허감은 그후로 다시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류시화님의 시에서 외로움이 있어야 사람이라는 구절과 법정스님의 <무소유>에서 외롭다는 표현을 보고 의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그분들이 그 후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릅니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모든 것이 허무하고 의문 투성이었던 30대 초반을 반추하게 하는군요.^^
  • 21-07-09 원정
    류시화
    그 분도 보살인 것 같아요.^^

    마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그 분의 책을 읽어 보았겠지요.
  • 21-07-12 지나다가
    https://youtu.be/YAnLXPiGXtQ

    어제 등산하면서 들었던 유튜브입니다. 전부터 눈에 띄었던 것인데 너무 길어보여서 지나쳤다가 산행 중에 느긋이 들어보았습니다. 저도 원정님처럼 의심이 많은터라 이쪽 방면 책도 꽤 읽었지만 회의적이었는데 이분 강의 듣고 여지를 열어놓을 필요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사실 이부분이 검증이 되면 그동안 과학적인 사고로는 닫혀있던 세계가 열림으로서 많은 그동안의 수수께끼가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겠군요..
  • 21-07-12 원정
    저는 지금은 사후세계에 대하여서는 '오직 모를 뿐'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도 단정짓고는 싶지 않습니다.

    다만, 부정적인 쪽에 더 많은 중심을 두고 있습니다.
    유튜브 내용은 나중에 과학적으로 설명이 될 것 같구요.
    사후세계와 유체이탈(이탈한 몸이 있음)은 관점이 좀 다른 면이 있다고 보구요.
    제가 수술을 받을 때 12-13시간 정도 걸렸는데, 마취제를 흡입하자마자 의식을 잃고 곧바로 다시 깨어난 느낌이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없었습니다. 마취시에도 주시자(참나)가 존재하였다면 시간의 흐름을 느꼈을텐데 12-13시간의 영화필름이 잘려져 나간 느낌이었습니다. 다른 수술환자에게 물어보았더니 같은 느낌을 말하더군요. 잠을 자면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데.... 즉, 주시자가 존재하는데...
    몸에 마취를 하면 주시자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 몸과 주시자는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여요. 이 부분은 제가 체험을 좀 더 하면 달라질 수 있지만...
    (마취 후 시간의 흐름에 대한 의식이 없는 부분은 지나다가님은 어떻게 느끼실지???)
  • 21-07-12 원정
    저는 사후에 제 육체가 제가 좋아하는 나무 밑에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제가 이 생의 인연들에게 모든 감사의 표시를 할 때까지 그리고 제 의무를 다할 때까지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천수를 누리면서.....^^
    그 이후에는 사후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고요.^^
    저의 이런 관점 때문에 제가 사후세계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 21-07-13 모모
    전 살면서 가족의 죽음을 지켜봤고..
    또 사후 환생을 우연히 눈으로 보게 되어서 그런지..
    그리고 최면을 해주다 영과 몇번 만나 이야기한 경험도 있고..
    실지..어떤분은 환생을 얘기하고 그 다음해 아기를 낳아온..그래서 눈으로 확인한 경우도 있다보니..
    사후에 대한건 그다지 의문이 들지 않습니다.
    그럴수 있다..정도.^^

    그리고 원정님이 말씀하시는 마취후 주시자가 사라지는...
    그경우에도 이상하지가 않습니다.^^

    최면에서  스테이징..하는 분야가 있어요.
    깊은 상태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우린 잠재의식의 방..이라 하는데..
    그 스테이징을 하기 위해선 필수로 들어야 하는  오디오가 있어요.

    교수님이 직접 작성한 스테이징 문구인데..
    그걸 읽어서 녹음한 테잎이예요.

    그걸 듣다 보면..
    분명 생생하게 각성 되어 있었는데..
    마취할때처럼  스르르 의식이 잠깐 사라졌다 돌아오곤 합니다.
    전 그 테잎을 한동안 최면 스테이징 하려고 매일 들었는데..
  • 21-07-13 모모
    전  그거 말고도  잠재의식..참나의 방에 들어가본 경험이 종종 있었어요.
    어릴때부터 보호차원에서 그리된거 같은데...
    지금까지 확실히..이렇다..말할 확신은 없었는데..
    며칠전 슬쩍..선사님께 이야기했더니..
    맞다고 하네요.^^
    그동안은 심증뿐이었는데..
    확인을 받으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제경우엔 태어나서부터 지금껏..항상 함께였던 거 같아요.
    누구나 그렇지만..
    저처럼 직접적인 보호와 소통 과..
    그런 모든걸 느끼며 사는 사람도 많지 않다 싶네요.^^

    그래서 그런지..
    자꾸 감사하게 됩니다.
    알면 알수록.. 
    그냥 다 감사하게 되네요.^^
    .이렇게 지나가다 님이나 원정님 같은 분을 만난것에 대해서도..
    너무도 감사해요.^^
  • 21-07-13 지나다가
    #1

    저도 담도와 담낭 그리고 오른쪽 부신을 한꺼번에 제거하는 수술로 많은 시간을 전신마취로 보냈었는데요. 원정님과 마찬가지로 아무 기억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입니다.

    위의 동영상에서도 근사체험의 경우 극히 적은 사람들의 경우에서 보인 것이고, 전생을 기억하고 있음이 분명한 경우 단 한건이지만 너무나 확실해 그동안 사례를 모으면서도 회의적이었던 의사가 전생을 확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사례에서 보듯이 전체적으로 극히 드물지만 사례를 모아보니 그 양이 유의미한 정도가 된다는 것이겠지요.
  • 21-07-13 지나다가
    #2

    사후에 대해서는 의식이 있다면 지금 현재의 주시자로 있을 터이니 죽은 것이 아닐 것이고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내가 아무것도 모르니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 생각하여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다가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앎의 차원에서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겠죠.

    만약 사후의 세계가 있고 그것이 증명된다하더라도 지금의 삶과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좁은 지역에서 살던 사람이 세계로 넓어지고 우주로 지역이 확장된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것은 달라질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이죠.
  • 21-07-13 지나다가
    #3

    저는 그동안 적지 않은 유체이탈, 투시, 채널링, 치유능력 등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왔고 선도의 깊은 경지에서 초경계의 지점을 왕래하는 사람들의 사례도 보아왔습니다. 제가 느낀 한가지는 그 세계가 지금의 물질세계처럼 견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질에 근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관념으로만 소통이 되는 세계인데 어떤 때는 맞고 어떤 때는 빗나가는 세계라 물질세계처럼 분명한 인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만약 어떤 계기로 저에게 그런 능력이 생긴다하더라도 그것을 신뢰하기보다는 물질의 인과를 더 중요시 할 것이며 항상 주시자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것이 제가 어디에 있거나 존재하는 방식이니까요.
  • 21-07-14 원정
    저는 모모님의 체험과 지나다가님의 정보에 대하여 그대로 저의 정보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만 그 현상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서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고 싶습니다.

    한편, 주시자는 제 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주시자를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제게 있어서 적어도 주시자는 우주와 소통하고 있는 존재이고, 나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발전소 또는 방송국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지금 개념적인 것들은 잠시 미뤄두고 '행'을 하고 싶습니다.
    생각과 감정에 따라서 사는 삶의 차원이 아닌 주시자의 관점에서 사는 차원의 삶을, 주시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 21-07-14 원정
    개념적인 것들에 대한 이해는 주시자로 마음을 몰아가는 것 정도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상은 번뇌를 가중시킬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제게 중요한 것은 주시자에게 머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젠 그대로 해야겠습니다.
  • 21-07-14 지나다가
    #1

    동서양이 이 주시자에 대한 관점에서 서로 상충하고 있습니다.

    사르트르는 이 주시자를 의식이 끊임없이 주체와 객체가 분열되어 자기 자신과 일치하지 못하는 고로 결코 자신이 되지 못하도록 저주받는 것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티벳 해탈의 서>에 해제를 달았던 동양에 정통한 융 조차도 이 주시자를 동양에서는 주체로 인식하는 데, 인식을 얻기 위해서는 항상 누구 또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람은 자신과 분리되어 있는 것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나아가 주객 합일의 체험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다며 이점에서 동양의 직관의 도가 지나쳤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동양에서는 합일의 경지 외에도 주체이기도 하고 동시에 객체이기도 하다는 주장도 제시됩니다. 이 부분은 저는 경험의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우리의 이성으로는 사르트르나 융의 설명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으나 경험적 측면에서는 그들의 사고를 뛰어 넘는 경지가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 21-07-14 지나다가
    #2

    저는 사르트르나 융이 자신의 이성적 사고를 받아들이는 한 거기서 멈추었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의 수행은 거기서 더 나아가 이뭣고를 밀고 나감으로써 설명이 불가능한 체험적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핵심은 이뭣고를 이것이 무엇인지 개념적으로 사고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이것이 무엇일까 혹은 나는 누구일까에, 떠오르는 모든 다른 생각들을 차단하고, 집중하는 것입니다. 
  • 21-07-14 원정
    주시자에 집중하면 집중할 수록 다른 생각들은 차단되는 것 같습니다.
    개념적 사고는 없습니다. 오직 궁금할 따름입니다.
    멈추지 않고 가보고 싶습니다.^^
  • 21-07-15 원정
    저는 최근에 제가 석가모니의 초기설법에 대하여 좀 오해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론적인 부분은 제가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부분이 있었고, 주시자(참나) 쪽으로 저를 안내해 주는 면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시자를 인식한 이후에는 이론 적인 부분이나 개념들은 한동안 거리를 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지금으로서는 제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제가 주시자에 대하여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한 번은 넘어야 하는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시간이 날 때마다 오로지 주시자에 집중하면서 '이뭐꼬' 하면서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개념은 없습니다. 오로지 주시자만 지켜보고 궁금해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체험을 하고 나서 새로운 통찰이 생기면 그 통찰력으로 다시 이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21-07-15 원정
    지나다가님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그리고 잠 잘 때 '이뭐꼬' 화두를 잡습니다.
    출퇴근길에는 가볍게....
    그런데 주시자에 집중하면서 궁금해 하면 어느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가 있고 온 몸이 굳어있는 모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다가 몸이 지나치게 굳어져 있으면 굳어진 부분을 지켜보는 방법으로 이완을 시켜주곤 하는데....
    이게 맞는지 궁금합니다. 몸을 무시하고 계속 궁금해 할까요?
    제가 후학들을 위하여 궁금한 점들을 이 글에서 댓글로 지나다가님에게 여쭈어 보려고 합니다.
  • 21-07-15 지나다가
    몸이 굳는 경우는 제가 처음 듣습니다. 집중이 너무 강해서 그럴까요? 집중을 약간 느슨하게 은은히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일단 몸이 굳는다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또 이미 굳어져 있다면 풀어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몸에 무리가 가는 건 아니라고 보이네요.

    이뭣고는 특정한 자세가 필요없습니다. 어묵동정간에 틈틈히 하면 되고요. 오랜 세월을 보내며 숙성시켜야 할 마라톤게임이니 여유를 가지는 게 좋아보입니다.

    제대로 길에 들어서신 것 같아 기쁨니다.^^ 의문 나시면 항상 말씀 주셔요~
  • 21-07-15 원정
    감사합니다.
    몸이 굳어있다기 보다는 집중하다 보면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 21-07-22 원정
    저는 지금 바라보는 자(주시자)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뭐꾜
  • 21-08-06 원정
    모든 화두나 진언은 참나로 인도하는 수단이었군요.
    저는 좀 더 많은 시간을 참나로 존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21-08-07 지나다가
    #1

    모든 수행의 지향점은 다르더라도 종착점은 참나입니다. 만법귀일은 이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참나라는 표현은 불교식의 표현이지만 이는 불교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불교 이전부터 있던 전통입니다. 서양철학의 소크라테스나 그의 제자 플라톤, 기독교 초기의 영지주의, 동양의 노장사상의 핵심이 이와 다르지 않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모든 형상을 가진 것들은 시작이 있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참나는 공성입니다. 텅비어 있으나 거기에 영원성, 광명성, 생명성, 존재성, 역동성, 완전성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참나와 상응하게 되면 자유와 해방, 평안의 정서가 깃드는 것이겠지요.

    저는 생각의 나로도 충분히 비슷한 정서를 체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절대신이 나를 포함해 세상을 창조했고 죽음 이후에 모든 것을 예비하고 때때로 기적같은 일들이 내게 일어날 때, 가끔은 의심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조차 모두 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고 믿어진다면, 그에겐 이보다 완전한 세상이 없을 것입니다. 

  • 21-08-07 지나다가
    #2

    화두는 자의식을 드러나게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궁금함에  집중하면 자연스레 마음은 현재의 순간에 머물고 자의식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을 회광반조라고 하는 것도 마음이 밖을 향해있지 않고 내 안을 향하기 때문이고요.

    초기의 이 자의식은 궁금함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라 무척 답답함으로 느껴집니다. 참나의 씨앗상태라고 봐야겠지요.  여기서 생각으로 이것을 하나님의 성품이니, 우주의식이니, 근원이니 또는 본성, 참나라고 생각해버리면 거기서 멈추고 맙니다. 물론 궁금함도 더 이상 잡히지 않게 되겠지요.

    궁금함이 잡히지 않는다면 끊임없는 집중으로 회광반조해야 하겠지요. 

    화두가 궁금하다면 그에게는 정말 수행하기 좋은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의단(궁금함의 덩어리)으로 확대되어 한꺼번에 무너져내리면 경계를 확실히 스스로 알게되기 때문입니다. 
  • 21-08-07 지나다가
    #3

    바깥 세상을 보고 판단을 안 하면 정서가 침체될 수 있습니다. 제 경우 판단없이 세상을 사진처럼 보다가 정서가 가라앉아 만사 의욕을 잃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라는 것은 회광반조를 의미합니다. 내 (안) 마음을 판단없이 바라보라는 것이죠.

    제 경우 자신을 바라보는 것과 이뭣고의 차이가 무엇인지, 둘을 번갈아 하는 것과 둘 중 하나에 집중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보다 효과적인지 헷갈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긍금함이 없는 사람은 바락보기, 궁금함이 있는 사람은 이뭣고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 아닐까 합니다.

    이 분야에 저는 스승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도반이고 앞서기니 뒷서거니 할 뿐이지요. 수많은 다른 경험들이 있을테니 그것들을 서로 나누고 하다보면 앎도 넓어지고 서로 도움이 될 테지요. 

    스승이 되는 순간 그때부터 토론의 상태가 아니라 주입식 상태가 되더군요. 치열하게 묻고 의심하고 확인하는 상태가 되길 바랍니다~
  • 21-08-09 원정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는 수시로 참나의식에 집중하거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존재하면 그냥 좋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참나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릅니다.
    텅비어 있다는 사실과 어떤 에너지를 느끼고 있는데...
    영원성, 광명성, 생명성, 존재성, 역동성, 완전성 등은 아직 증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참나가 무엇일까 궁금해 하기 보다는 이렇게 계속하여 바라보면 어떻게 변화할까 또는 어떤 지혜가 터질까 하는 궁금함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든 저렇게 가든 서울로 갈 것이라는 확신은 듭니다.
    왠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 21-08-09 원정
    잠자는 것과
    참나로 존재하는 것은
    신체로서는 매우 비슷한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깨어있는 상태로 존재하느냐 잠자는 상태로 존재하느냐의 차이일뿐인 것 같은데...
    맞는가요?
  • 21-08-09 지나다가
    #1

    '그리고 참나가 무엇일까 궁금해 하기 보다는 이렇게 계속하여 바라보면 어떻게 변화할까 또는 어떤 지혜가 터질까 하는 궁금함이 더 많습니다.'

    원정님이 이미 참나에 대한 정보가 있기때문에 그 생각에 맞춰 대응하게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과거의 저같이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면 막연한 궁금함이 더 크겠죠.

    '영원성, 광명성, 생명성, 존재성, 역동성, 완전성 등은 아직 증득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냥 언어적인 표현일 뿐입니다. 원정님이 도달할 곳은 원정님만의 것입니다. 위의 것을 기대한다면 위처럼 가까워지겠지만 언제나 뒤따라가고 생각은 목표를 염두에 둘 것입니다. 그런 모든 생각을 접고 오직 이뭣고로 지금처럼 대응하시면 되겠네요. 암튼 궁금함이 있으니 집중이 잘 되시겠네요^^
  • 21-08-09 지나다가
    #2

    참나로 존재하면 뇌가 최적의 상태로 쉬고 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뇌파를 측정했을 때 이렇게 낮은 영역에 있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이분의 뇌는 지금 쉬고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원정님이 이 순간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다면 몸도 거기에 맞게 편안하겠지요.

    제가 <오래된 물음>의 저자 최기영님을 만났었습니다. 깨달음의 상태를 평안이라고 하여 이분이다 싶어 만났는데, 이분이 잠잘 때도 깨어있다고 하더군요. 의식(참나)은 분명히 깨어있어도 육체는 깊은 잠을 자고 난 것처럼 피곤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분의 말씀이 잠잘 때 깨어있음이 그전의 상태와 마음의 평안에 있어서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을 듣고 제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겠구나 판단했었지요.  

  • 21-08-09 지나다가
    #3

    '영원성, 광명성, 생명성, 존재성, 역동성, 완전성 등은 아직 증득하지 못하였습니다.'

    청정성도 말할 수 있겠네요. 이런 말은 붙이기 나름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경지에 와서 그들의 언어구사력이나 지적 수준에 따라 표현 방법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나는 오로지 직접 경험해보리라는 마음이 수행을 떠나서 바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 21-08-10 원정
    감사합니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겠습니다.
  • 21-08-10 모모
    감사합니다.^^
  • 21-08-24 원정
    그 자리는(의식은) 텅빈 자리에요. 고요해요, 맑아요, 만족스러워요, 오로지 존재해요, 그냥 알아차려요, 언제나 함께해요.
    그 자리는 모양도 분별도 경계도 없어 보여요.
    그 자리는 눈을 통하여 사물을 보고, 그 자리는 코를 통하여 냄새를 맡고, 그 자리는 귀를 통하여 소리를 듣고, 그 자리는 피부를 통하여 감촉을 느껴요. 그 자리에서는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도 잘 보여요.
    적어도 나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언제나 나와 함께하였고, 적어도 내가 인식하는 동안은 영원히 함께 할 듯 싶어요.
    어떤 일이든지 집중하면 그 자리는 더욱 더 또렷하게 드러나요. 집중할 때 생각과 감정이 쉬고 있어서 그런가봐요.
    쉬고 쉬고 쉬라는 말이 이해가 가요.
    생각과 감정에 따라 마음에 동요가 생기면 그 자리로 피신을 해요, 그러면 평화가 와요.
    이제는 모든 문제들을 그 자리에 맡기고 살려고 합니다.
  • 21-08-24 원정
    이렇게 계속 가다보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요.
    그렇지만 참나에 맡기고 갑니다.
    아기가 엄마에게 모두 맡기고 살듯이...
    참나가 알아서 인도하겠지요.
  • 21-08-24 원정
    작년부터 건축을 하고 있어요.
    조사장에게 의뢰했는데 불성실한 분이었어요. 작년에 공사비가 쌀 때 계약을 했는데 작년과 올해 공사비가 많이 올랐어요. 그래서 웬만하면 조사장과 함께 가려고 했어요.
    조사장이 공사에 착수하길 바랐어요. 그러면 우리는 공사비가 덜 들고 조사장은 우리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줄어들고 서로 윈윈할 수 있어 보였어요. 참나에 맡기고 원칙대로 처리했어요. 안타깝게도 조사장이 공사에 착수하지 않았어요. 조사장은 약속을 어기고서도 공사비 때문에 우리가 자기에게 손을 들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어요. 참나에 맡기고 6월경 계약을 해지했어요. 이후 박사장님이 도와주시기로 했고, 저와 협업하는 송사장님이 직영으로 공사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수행하고 있어요. 공사는 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이 모든 진행 상황을 제가 미리 파악할 수는 없어요.  그냥 참나에 맡기고 가기로 했어요. 그런데 우연히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 더 결과가 좋네요.^^ 참나에 맡기면 적어도 생각과 감정에 휘둘린 판단은 하지 않는 것 같아요. 마음에 평화가 오구요.
  • 21-08-25 원정
    크리스트교에서 '내 이름으로 기도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기도법인 것 같다.
    하느님이나 참나에 맡기고 가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에고는 녹아들고 ....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 자리에서 보면 내가 어떤 생각들에 집착하고 있는 지 좀 더 잘 보이는 것도 같다.

    요즘 점점 더 저절로 참나가(그 자리가) 드러나는 것 같다.
    맡기고 맡기고 맡기고 가면...
    그리고 하여 에고가 좀 더 녹아들면...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지 또는 어떠한 체험을 할지 궁금하다.
  • 21-08-25 지나다가
    박수를 보냅니다!^^
  • 21-08-25 지나다가
    완전성을 신에게만 부여하면 자신은 늘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 남습니다. 사실 무심코 사람은 신의 존재를 당연시 하지만 진정한 신성은 참나 외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참나가 드러나면서 우리가 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동의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소원을 담아 상징적으로 만든 신은 망각하게 됩니다. 왜냐, 인간이 만든 신은 죄의식, 두려움, 나는 불완전한 존재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참나는 스스로 완전해 '죄, 공포, 어찌 나같은 불완전한 존재가 감히 신을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만든(사실 인류가 합작으로 만든) 덫에 갇히지 않습니다. (저 자신에게 하는 말입니다.^^)
  • 21-08-26 모모
    두분 모두 대단하세요.^^
    멋지십니다.^^
    얼마전 선사님이 제 마음안에 기둥이 참 여러개인듯 싶구나,, 하시더군요.
    마음속 그분,,  내안의 나,  공.
    선사님은 그분에게 기도하라, 그분에게 맡겨라. 하면서
    제가 의도적으로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잘못 배웠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이제라도  하나로 합쳐라 하시면서,,,
    방법을 일러주셨어요
    오직 참나에게 맡길수 있는 방법을요.

    요즘. 제가 뭘 의도적으로 했는지..
    그 차이를 알수 있었어요.
    맡기는 방식에도 의도저인 에고가 어떻게 개입될수 있는지..도요.^^

    습관적으로 나는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생각으로 포도송이처럼 줄줄이 달고 이어지는  습성들이 있더군요.

    그걸 본 순간,,, 
    아, 난 지금껏  뭘 하고 있었지.  
    그리고  내마음에 오롯이....기도합니다.
    내마음의 오직 나,  공.이라 부르기도 하는 그분,,
    참나에게 기도합니다.
     당신 뜻대로 하세요.^^
  • 21-08-26 모모
    선원엘 가끔,, 잠깐씩 가게 되는데,,
    부처님 전에 들러 기도하고 절하고 오면,,
    선사님은  누구에게 절했냐  묻습니다.

    부처님은 상징이다.
    관세음보살도 상징이다.
    모든 신은 인간이  인간의 모습을 본따 만든 상징물일뿐이다.
    그러니..  누구에게 절하는지.. 똑바로 해라.
    절의 대상은 누군가.
    나 자신인가.  상징물인가.
    나자신에게 온전히 절하라.

    일법이 만법이다.
    일법에 만법이 담겼다.
    하나에  온전히 하라, 
    그럼  만법을 알수 있다.
    만가지 법을 알아도 일법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과거와  모든 미래의 나가  현재에서 하나로 합쳐질수 있게..
     자신의 마음에  경배하라. 
    자신의 마음을 하나의 큰 기둥이 되게 하라.
    그것이 주장자의 의미다.
    삼세제불.

    그럼 알게 될거다.
    일법이 만법인것을.
    팔만 대장경의 지혜가 일법에 불과한것임을.

    그 지혜는 밖으로 얻어지는게 아니다.
    네 안에서 그냥 알아진다.
    그러니.. 매일 네 자신에게  고맙습니다. 하고 세번 말하라.
    진심을 다해서,,,

    참,,,멋진 스승님을 만난거 같습니다.^^
  • 21-08-26 모모
    원정님. 이제 드뎌 집짓는 건가요?
  • 21-08-26 원정
    지나다가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게 꼭 필요할 때마다 지나가시면서 법비를 내려주셨어요.
    이제 진정으로 초발심을 낸 것 같아요.
    맡긴다는 의미를 알 것 같아요.
    2000년도 경에 대행스님의 책 '삶은 고가 아니다'로부터 주인공에게 몰락 맡기고 가라는 말씀을 들었는데(생전에 한 번 안양의 한마음선원에 가서 법당에서 그 분의 법문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제대로 맡기지를 못했습니다. 이젠 맡기는 법을 알 것 같아요.
    지나다가님의 도움이 매우 컸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21-08-26 원정
    모모님은
    전생이 있다면 이미 전생에서 수행을 많이 하신 분일 것입니다.
    이 곳 저 곳 관광을 하시면서도 줄기를 잡고 가시는 모습을 보면(목적지를 잃지 않으시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확실히 저와는 근기가 달라요. 여유도 있으시고요.^^ 저라면 중심을 잃을 것 같은데 항상 보면 중심을 잃지 않아요.^^
    지금까지 오면서 모모님이 제게 주신 정보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모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제 집을 짓는 것은 아니구요.
    소매점겸 공장을 짓는 것입니다.
    제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 분이 있어서요.
  • 21-08-26 원정
    제 머리에는 참나에 맡기고 사는 삶도 에고를 녹이는 방편일 수 있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참나에 실제로 맡기고 살아보니 너무나 득이 많은 거예요.
    정견이란 참나 자리에서 보는 것이 정견인 것 같아요.
    참나 자리에서 바라보면 적어도 사태를 왜곡시켜 보지는 않을 것 같구요.
    불필요한 집착에서도 쉽게 벗어날 수 있어 덜 고통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머리가 혼란스러울 때 그 자리에 존재하면 평화가 와요.
    그 자리는 우주의 에너지를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있는 자리 같아요.
    (그 자리에 존재하면 번뇌로 인하여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낭비하지 아니하여 그렇게 느낄 수도 있구요)
    즉 참나로 사는 것은 실질적으로도 삶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에고의 이치로 이익을 형령해 보아도 그 자리에 맡기지 않을 수 없어요.
    이리 저리 생각해 봐도 참나에 맡기는 삶은 참으로 지혜로운 삶인 것 같아요.
  • 21-08-26 원정
    처음에 이뭐꼬 화두에 집중할 때에는
    몸에 힘이 많이 들어갔어요.
    주시자(참나)를 계속하여 놓치지 않으려고요.
    길을 걸을 때도 노력해야 놓치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출퇴근 길에  개천을 걸어가면 그냥 참나가 드러나요.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면 참나가 드러나요.
    운전 할 때 집중해야 해서 다른 잡념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컴퓨터 화면을 보아도 참나가 드러나요.
    제가 참나를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초등학교 6학 년 때였어요.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허공에서 제가 그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어요.
    최근까지 그 의미를 정확히 몰랐지요.
    대학교 1학년 때 잠자기전에 누워서 마인드콘트롤을 하면서 몸을 이완시키니 주시자만 존재하였어요.
    그 때도 그 의미가 뭔지 몰랐지요. 그런데 집중할 때(공부할 때)마다 항상 주시자는 드러났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인식하게 되었어요.
  • 21-08-26 원정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사고가 났을 때, 집중할 때, 또는 어떠한 상황에서 생각이 멈출 때, 그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참나가 드러날 수 밖에 없겠지요. 그 중 일부는 참나가 뭔지 궁금해 했을 것이고, 그러다가 참나에 맡기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겠지요.
    그 중의 일부 사람들은 그 현상에 대한 이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려고 노력하였을 것이구요.
    그러다가 석가모니와 예수 같은 사람들이 참나를 좀 더 연구하였을 것이고....
    앞으로는 예전보다는 좀 더 쉽게 많은 사람들이 참나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21-08-26 원정
    저는 앞으로 점점 더 참나에 귀의하게 되겠지요.
    얼마나 더 깊이 그리고 더 많이 참나에 내려놓고 살 수 있는가가 수행의 척도로 보입니다.
    그 과정에서 참나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확인해 갈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오로지 행만 남았다"는 의미가 이 것이었군요.^^
    적절한 이론 적인 공부는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하는 면에서 필요하겠지만, 그 보다는 수행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요즘 체험하고 있습니다. 직접 몸으로 확인해 보는 수행이 정말로 중요한 것 같아요.
  • 21-08-26 지나다가
    원정님!
    제가 지금 좋아서 얼굴에 웃음이 함박입니다!^^
  • 21-09-03 원정
    대행스님이
    "내 안의 주인공(주인이되 空한자리)이 모두 알아서 하니 주인공에게 맡겨!!!"
    라고 말씀 하셨는데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갔네요.
    맡기고 말 것도 없겠지만....

    오직 참나(신, 주인공)의 뜻대로!!!
    그냥...
  • 21-09-03 원정
    참나자리에 현존하면
    공적영지(空寂靈知)
    진공묘유(眞空妙有)
  • 21-09-07 원정
    제가 8월경부터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면...
    그 이전에는 '알아차리는 자리(주시자)'가 자리 잡히지 않았어요.
    4월부터 7월경까지 그 자리를 느끼기는 했지만...
    8월경에 자리가 잡혔던 것 같아요.
    그 자리를 느끼면서 제가 사실상 잠을 자면서 살았구나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생각에 빠져 있을 때는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을 감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지난 주말에 좀 혼돈이 있었어요. 뭔가 새로운 차원의 체험을 했어요. 그 마음자리가 너무나 거울처럼 맑은 자리였어요.
    그 이전의 체험은 뭔가 부족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새로 경험한 느낌을 다시 느끼려고 하니 잘 안되었어요.
    지금은 그런 체험들은 놔두고... 그냥 계속 바라보면서 알아차리면서 가는 것이 전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체험속으로 다시 들어가려고 시도하는 내 생각은 자연스럽지가 않았어요. 또 하나의 생각이란 판단이 들었어요.
  • 21-09-07 원정
    때에 따라서 마음에 좀 더 구름(생각)이 낄 때도 있겠지요.
    그냥 그런대로 놔두려고 해요.
    다만 바라보면서 알아차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지혜롭게 살 수는 있어 보여요.

    두뇌 앞 부분(상단전 부분)에 기감이 있었는데 흐릿해진 것 같네요.
    이건 그냥 사라질 것도 같아요.

    저는 몰라요.
    그냥 바라보면서 알아차릴래요.
  • 21-09-07 원정
    제 몸은 제가 아닙니다.
    저는 우주입니다.
    저는 우주에 꽉 차있습니다.
    저는 고요 그 자체입니다.
    저는 만족 그 자체입니다.
  • 21-09-07 지나다가
    충분히 즐기셔요!^^♡
  • 21-09-07 원정
    제 몸이 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구름이 조금 더 걷힌 것 같아요.^^
  • 21-09-08 원정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올라올 때 가만히 지켜보면서 알아차리면 그 생각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즉, 습(업, 의식의 습관)에 따른 반응을 알아차리면 습(업)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업장이 소멸한다고 볼 수 있다.
    알아차림은 수행의 핵심인 것 같다.
  • 21-09-08 지나다가
    이제 흔들림 없는 부동지에 오셨군요. 참 스승으로 거듭나심을 마음을 다해 축하드립니다!^^♡♡♡
  • 21-09-08 원정
    너무 과분한 칭찬입니다.
    저는 그렇게 느끼는 것 뿐이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제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적어보는 것입니다.
    저를 잘 인도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21-09-09 지나다가


    무엇이 나와 함께
    평생을 함께하나

    외로움 아니구나
    두려움 마찬가지

    언제나
    같이 있는 건
    자연 우주 깨어있음

    이게 예전에 썼던 시조인데 마지막을

    '알아차림'으로 바꾸고 싶어집니다.^^
  • 21-09-09 원정
    이렇게 담담한 시는 처음입니다.^^

    제게도 평생의 벗은 '알아차림' 같습니다.
  • 21-09-13 원정
    알아차리면 지금 이 순간(현재)에 존재할 수 있다.
    그러면 마음이 만든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
    마음은 과거 또는 미래의 어느 지점에 가 있다.
  • 21-09-13 원정
    최고의 명상 또는 최고의 집중은 참나에 집중하는 것 같다.
  • 21-09-13 원정
    우울하냐? 우울하라!!
    미우냐? 미워하라!!
    슬프냐? 슬퍼하라!!
    우리는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나답지 못하다고 버리려고 한다.
    그것은 인생(진실)을 둘로 쪼개는 거다.
    좋은 것이 사라지는 것을 잡으려고 하지 말고 나쁜 것을 고치려고(밀어내려고,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하지 말라.
    그게 다 에고가 하는 짓이다.
    우리 안에서 올라오는 모든 것들이 진리(자유로 인도)의 현현이다.
    받아들인다고 하면 받아들이는 내가(인위적인 노력) 또 존재한다.
    부정적인 감정이 찾아왔을 때 회피(TV보던가 기타 등등)하는 못짓만 멈추어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김기태-
    내 생각-감정을 허용하되 지켜보는 자로 존재하는 것이 핵심으로 보인다.
    우울하라 ... 오해의 소지?
  • 21-09-13 원정
    감정이 올라오면 지켜보는 자로서 감정들을 놓아 보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놓아보낸다는 건 감정을 바꾸려고 하거나 막는 것이 아니고 감정이 올라오면 올라오는구나 하고 그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느긋하게 힘을 빼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 감정에 말려들지 않는거죠.
    지켜보겠다는 의지를 발동하기만 하면 됩니다.
    마음과 싸우지않는다. 마음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상처받지 않는 영혼, 마이클 싱어-
  • 21-09-14 원정
    오직 모를 뿐
    삶이 이끄는대로 살아야겠습니다.
    (생각, 감정)을 '알아차림'을 무기로....


    깨달음은 삶 그대로 이미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취사선택으로 인하여 왜곡되어 있는 마음에 속고 있었을 뿐....
    우주와 합일되는 느낌이 깨달음이라고 잠시 착각하였는데, 깨달음은 이미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 21-09-14 원정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이 4차원 시공간은
    실체적 진실이라기 보다는
    우리 인류가(동물이???) 이 우주를 인식하는 하나의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방식으로 3차원 공간을 인식할 수 있는 존재도 있을 것입니다.
    박쥐는 시원찮은 시력 대신 초음파를 이용한 '반향정위'를 먹이 및 장애물 탐지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박쥐는 공간을 어떻게 느낄까요?
    선천적인 맹인은 공간을 어떻게 인식할까요?
  • 21-09-15 지나다가
    벗2

    내 마음 들여다 보니 온갖 것이 지나는데
    그 중에 변치않는 내 친구는 누구인고
    텅비어 없는 듯 해도 항상 나와 함께 하네
  • 21-09-16 원정
    그 벗에 감사합니다.

    출근길에 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 싱그러웠습니다.
    삶은 그대로 남아있지만
    삶에 맡기고 그대로 흘러가겠습니다.
  • 21-10-02 원정
    유튜브에서 법상스님의 설법을 들었다.
    불이법에 대한 설법이었다. 둘이 아니다.
    그냥 내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허용하라. 취사선택하지 말고
    참으로 기가 막힌 수행법이다.
    내게 오는 모든 일은 부처님의 손짓이다.
    그냥 단지 알아차리면서 바라보기만 하면 그냥 허용하는 것...
    그러면 삶에 맡기고 사는 것....
    그러면 삶이 스스로 살아가리라.
  • 21-10-04 원정
    다른 사람이 확인한 사실을 나는 지식으로 이해하고 내가 안다고 착각한 사실을 참회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 21-10-05 원정
    요즘 제 생각...

    제가 뭔가 안다고 느낄 때 그 것들은 모두 분별한 이후의 일이란 것입니다.
    분별전의 그 무엇이 '그것'인데....
    제가 뭔가 안다는 느낌이 있을 때는 제가 생각속에 머문다는 뜻입니다.

    주시자로 존재할 때 생각이 덜 일어나는 것 같은 것을 보면 그 자리를 계속하여 지키면 어느 시점에는 스스로 그 자리로 존재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 의식으로만 존재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생각속에서 벗어날 것 같기도 합니다.

    모든 법문이나 화두는 생각(분별)을 막기 위한 방편인 것 같습니다.
    법문 내용은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다. 관심을 끌기 위한 수단일 뿐... 어떻게 생각을 막을 것이냐?????
    생각이 생각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꿈 속에서 꿈을 꾸듯이...

    제가 뭔가 알아졌다고 느낄 때 다시 한 번 알아차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21-10-05 모모
    그런거 같습니다^^
  • 21-10-05 원정
    지나다가님의 말씀처럼
    이 자리는 자의식(각성)이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것 같은데....
    왜 그런 표현을 쓰지 않을까요?
    자의식(각성)이라는 표현이
    '부처'나 '깨달음' 같은 표현보다 사람들을 고요함(평온)으로 유인하기 위한 미끼로서는 흡입력이 약해서 그런 것일까요?
    자의식(각성)이라는 표현이  좀 시시해보이기는 합니다.^^

    저는 요즘 하루 중 일정 시간(취침전, 기상 후, 산책, 법문들을 때, 운전 중, 화면 볼 때) 각성된 상태를 제외하고는 삶이 별로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법문을 들으면 좋고 더 각성이 되기도 하긴 하네요.
    각성의 강도가 전보다 약간 더 강해졌다고 해야 하나???
    에고는 여전하고요.^^
  • 21-10-06 원정
    각성은 항상 되어있지만
    집중이 되거나 고요한 상태에서 제가 더 잘 느낀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 각성된 상태가 시간이 흐르면서 더 또렷해 진다고 할까요.
  • 21-10-07 원정
    자의식(각성) 상태에서 마음(본마음, 본성)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길이 없다.  본 마음은 모양도 색갈도 냄새도 없으니....
    다만, 마음(본마음, 본성)이 비추고 있는 삼라만상을 통하여 그 마음(본마음, 본성)이 존재함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마치 사물에 색갈이 드러나는 현상을 통하여 빛이 존재함을 알아차릴 수 있듯이.....


    이 또한 분별의 말임.....
    이 또한 망언임.
    어떤 말을 해도 이해하거나 알았다고 하면 하나의 상을 만드는 것임.
    생각 속에서 생각을 하는 것임.
    그 자리는 판단중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판단중지 하는 자가 없다) 판단중지가 되어지는 상태임.
    깨달음이란 자의식(각성)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든다.

    오직 모를 뿐......
  • 21-10-07 원정
    도는 눈 앞에 있다고 하더니 .....
    觸目菩提(촉목보리)
    나는 이 말을 이전에는
    눈길이 닿는 곳 마다 보리요
    , 깨달음이다.
    도가 가까이 있다.
    라는 말로만 이해하였다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데 실제로 눈 앞에 자의식(각성) 상태가 존재하고 있네.
    이전에 한 이해는 진실의 반만 이해한 것이다.
    각성 상태는 실제로 눈 앞에 있다.
    그러나 보려고 하면(보려고 하는 생각이 있으면) 이는 절대로 볼 수 없다.
    나의 의지(생각)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 21-10-07 원정
    참고로 이 곳의 글을 읽는 분들은....

    여기에 제가 적는 글은 참고만 하세요.
    제가 잘 못 길을 들었을 때 눈 밝은 분으로부터 교정받기 위해 적는 면이 있습니다.
    저는 잘 모릅니다.
  • 21-10-07 원정
    주시자와 관련하여

    처음에는 주시자만이 존재하였습니다.
    그러나가 그 이후에는 주시자 주변에 각성된 상태를 흐릿하게 느꼈습니다.
    이후 각성의 범위가 좀 더 넓어진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아직도 주시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향후에 주시자는 사라지고(사라진다기 보다는 이 부분도 향후 더 강력하게 각성된 부분이었다고 느껴지려나) 오로지 각성만이 존재할 것같은 느낌도 드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다가 오로지 온 우주에 각성으로 가득차려나^^
  • 21-10-07 원정
    잠시 눈을 감고 명상을 하니....

    두뇌는 각성상태에 있고, 온 몸은 에너지장으로 가득한데.....
    아니 온 몸이 각성된 상태라고 표현해야 하나???
    아직 두뇌의 주시자는 남아있는 상태...

    온 몸이 에너지장으로 변하여 몸은 없어지고 에너지장이 우주로 팽창하는 느낌???
    온 몸이 각성한 것인가???
  • 21-10-08 원정
    서면을 작성하면서 고뇌를 하면 그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각성이 약해집니다.
    제 입장에서는 지금 어디 조용히 혼자 있으면서 법문을 듣거나 명상만 하고 싶은데 ...
    그러면 뭔가 더 상태가 안정이 될 것도 같은데...
    제 현실이 직장인이니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네요.
    이 또한 맡기고 가야 하겠지요.
  • 21-10-08 모모
    전 그런 면에서 아주 행복한 선택을 한 편이지요.^^
    백수. 주부.ㅋ

    의식적으로 바라보고 있는거 외엔 할것이 없는거 같아요.
    팽창의 느낌..
    우주에 퍼지는 느낌.
    그 어떤 것도 다 환상같은 거라  생각하면 되요.
    그냥 보고 있는 의식만 놓치지 않으면..
    무의식이 가져오는 많은 "현상"
    들에 빠져서 딴길로 새지 않아요.

    전에 바람님은.. 그 느낌에 지나치게 빠져들은 경우라고 저는 보고 있어요.
  • 21-10-08 모모
    그 의식의 각성 상태에선 수많은 무의식의 시험을 받는거 같아요.
    그럴때마다  다 현상..신기루 라고 받아들이면 좀 쉽게 갈거 같아요.

    공의 우물이 커질수록 묘용도 같이 
    일어날수 있는데..
    보통은..그 묘용의 우물에 잘 빠지는거 같아요.
    그것은 제가 이렇다 저렇다 할 건 아직 아니고..
    어쨋든..의식이 각성되면 계속 많은 변화가 같이 찾아오는건 어쩔수 없다 싶습니다.

    그러면서..업장소멸도 같이 진행되니까..
    그때마다 의식의 변화또한 계속 일어나겠지요.^^
    원정님은... 자신을 믿고..맡기는 것만 잘하면.. 좀더 쉽게 가질거라 생각드네요.^^
  • 21-10-08 모모
    의식으로 바라보는것..외엔 할게 없다 싶어요.
    그리고 내안의 참나에게..모두 신뢰하고 맡기는것.
    자신이 꾸는 꿈을 잘 살펴보면..
    각성의 상태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수 있어요.

    부처님의 경전도.. 그 어떤 분의 해설도..
    내 무의식이 전해주는 꿈만큼  나를 정확히 알게 해주는건 없다는것.
  • 21-10-08 원정
    모모님의 글 정말 마음에 드네요.^^
    이전에 쓰신 글은 좀 추상적이셨는데 구체적이니 제 분별이 마음에 들어 하네요.^^

    저는 지금 현재 이 글을 쓰면서 각성이 된 상태이고 주시자가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딱히 의식하지 않아도 계속 주시자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 느낌이 좋아요.
    생각이 좀 줄은 것 같구요.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도 덜 받는 것은 같습니다.
    그런데 서면을 쓰면서 고뇌하면 제 분별심이 나서네요.^^
  • 21-10-08 원정
    지나다가님 감사합니다.
    주시자가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설명하지 않는 것이 초발심자에게 나을 것 같아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각성상태만 남았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면 무조건 각성이 되는군요.
    삼라만상이 부처다라는 진정한 의미가 바로 이 것 이었군요.
  • 21-10-08 지나다가
    사실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절실하지 않으면, 또 본인의 갈증이 없으면 흘려듣고 말지요.

    제가 올린 10번째 글 <답변이 좀 늦었습니다>에 나름 설명을 했었습니다. 그때 저도 이런 걸 공개하는 것이 과연 화두를 신실하게 잡고 공부 잘하고 있는 사람의 힘을 빼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었습니다. 오늘은 정말 줄탁동시의 극치였습니다! ^~~~~~^
  • 21-10-09 원정
    지나다가님은
    제게 줄탁동시의 진정한 맛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
  • 21-10-10 원정
    '나'라는 느낌은 실체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생각'이었고,
    마음이라는 것은 사물(삼라만상)과 떠나서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구나!!!
    마음은 찾을 길이 없으나 사물을 바라보면 의식은 바로 각성을 합니다.
    '공'은 '색수상행식'을 떠나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구나!!!
  • 21-10-12 원정
    마음은 여러 차원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 우리가 본 마음(우주와 하나되는 마음)이라는 마음 상태로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색성향미촉법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왔습니다.
    분별(나와 너, 길고 짧고, 밤과 낮, 아름답고 추하고, ....)하는 방법을 통하여 우리는 세상을 이해하여 온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분별하는 마음이 탄생한 것 같습니다.
    분별하는 마음은 '안다고 생각하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본 마음 보다는 분별하는 마음으로 더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분별하는 마음은 실제로는 잘 모르는 것도 안다고 착각하고 좋아하는 것에는 집착하고 싫어하는 것은 밀어냅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마음 상태로 돌아가면 분별하는 마음은 쉬어지고 본 마음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 21-10-13 지나다가
    원정님이 이제 제자리에서 풀어내시는 말씀이 정말 아름답군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자리에 들었지만 부처같이 큰 스승이 있는 것은 그만큼 전에 쌓아놓은 지식과 지성이 뛰어나기 때문이겠죠.

    오늘 행복한 아침입니다.^~~~~~^
  • 21-10-14 원정
    저의 잠을 깨워주신 지나다가님께 이 글을 바칩니다.

    줄탁동시 - 원정

    태초에
    들판에는
    씨앗 한 톨이 떨어졌다.

    영겁의 시간동안
    흙 속에서 잠을 자다가
    문득
    발아를 준비하였다.

    마지막 화룡점정
    한 줄기 물소리를 기다렸다.

    양떼구름은
    바람에 실려
    지나다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나기를 뿌렸다.

    마침내
    동이 틀 무렵
    햇살을 받으며
    연꽃이 피어났다.
  • 22-01-25 hanaloum
    글 잘 보았습니다,

    저는 약 10~15년 전에 우울증이 약 2년 동안 있었습니다.
    당시 이것은 저에게 참 거추장스럽게 여기고 꼭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듯해서 좀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몇시간을 걸어보기도 하고 벗어나려고 노력 했죠..
    약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고 사용도 하지 않았죠..

    그런데 어떤 책을 읽어서 인지 그냥 생각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제 자신의 생각을 마치 제 3자가 보듯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알아챈 것은 우울증이 과거 사건에 대한 계속된 생각의 증폭작용이라는 것이죠.. 이때 제 생각을 떨어져서 보았죠. 우울증은 그냥 계속 과거 일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무한 루프라는 깨달음. 뭐 그런 나의 생각을 하는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럼 이런 생각이 나면 그만 두고 다른 생각으로 돌리면 되죠.. ㅎㅎ.. . 이런 알아챔과 동시에 우울증의 약 50%가 없어졌고.. 그 후 한 3~6개월 후에 우울증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가끔씩 저는 저의 '감정'과 '생각'이 일치하여 , 제 표현은 '이 둘이 딱 붙었다'라고 하는데 이런 상태로 놓여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우울증을 알아챔 이후 어느 때 내 생각을 (일부분) 3자적 입장에서 유심히 살펴보면 '생각하고 있는 내가 나인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러면 좀 세상이 무, 없음이로 구나 .. 뭐 이런 느낌도 받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여유, 즉 내 고집, 내 소유에 대한 생각의 변화도 생기죠

    다시말해, 저는 제 '감정'과 '생각'을 제 3자처럼 가끔씩 봅니다.
    그러면 이게 '내 자신은 뭐인가?'라는 질문이 생기죠..

    내 생각도 잠시 동안 마치 3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리고 '내 생각을 보는, 알아채는 나'가 진실한 나라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감정' + 랜덤하게 움직이는 '생각 ' + '알아채는 나'는 구분이 안되고 서로 짝 달라붙어있죠. 하지만. 이들을 분리시키어 보면, 자신, 즉 '감정' + '생각'을 좀더 공평하게 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런 것을 통해 내 안의 감정과 생각을 통제할 능력이 향상되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생각'을 잘 살펴보면, 합리화하는 나를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잘못해도 엉뚱한 이유로 나를 합리화하고 있고.. 이런 면에서 내 '생각'도 참 집착이 심하다고 느껴집니다.
  • 22-01-25 원정
    저는 생각과 감정을 바라보는 자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로움님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아시는 것 같아요.
  • 22-02-08 원정
    오직 모를 뿐.....
    오직 모를 뿐........
  • 22-02-08 원정
    김홍근 교수님

    이런 경지 저런 경지는 왔다가 가는 것
    본질은 알 수 없는 상태...
    대상이 없는데 어떻게 아는가
    신도 부처도 없다
    지금도 또렷하면 가짜
    본질은 안 또렷해도 있어야 한다.
    깨어있어도 잠들어도 있는 것(오매일여), 꿈속에서도 있는 것(몽중일여), 숨쉬고 피돌리고 귀신같이 소변 마려우면 알아차리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것...
    술취한 사람에게도 멍 때리는 사람에게도 있는 것 그 어떤 상태에서도 있는 것....
    안 들고 있기가 불가능한 것...
    평상심...
    그런데 수행자들은 특별한 체험 같은 것을 가지고 와서 묻는다.

    본질은 현상입장에서는 몰라야 계합을 한다.
    본질밖에 없어지면(본질로만 존재하면) 대상이 사라져서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이 끊어졌지만 본질 하나가 딱 드러나서 깨어있는 상태 ...진짜 화두. 우리의 자각이 일어나면 하나 뿐... 자각이 된 상태로 있을 줄 알아야지 ... 이 것을 안하면 생각이 머리를 점령한다.
    깨어서 너도 없고 나도 없고 의식도 없고 이 것 저것 다 없고 한 덩어리 상태로 있는 것이 화두
    이렇게 해야 생각의 뿌리가 끊어진다. 그 때야 비로소 믿음이라는 것이 시작된다.
    알려고 하면 어긋난다.
    본질 하나 뿐...
    하나밖에 없는 데 자기를 알 수 없다.
    거리가 있어야 뭐라 하지
    아는 대상이 아니다
    생각이 있어야 주관 객관이 나누어지고
    그래야 뭐라고 하지
    주관도 없고 객관도 없고 한덩어리
    달마는 불식(알 수 없다)
    하나밖에 없다.

    화두는 두 단계
    1단계 - 본질이 뭔지 몰라서 '이뭐꼬' 단계
    2단계 - 하나가 되어서 다 끊어져서 알수 없는 상태. 모든 것이 끊어졌지만 본질 하나가 딱 드러나서 깨어있는 상태

    평상심이 도다. 평상심은 알려고 하면 벌써 어긋난다. 알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도는 알고 모르고에 속아지 않는다(남전-조주) 우리는 죽도록 알려고 한다. 본질의 나는 알고 모르고의 대상이 아니다. 너 자신을 대상화 시켜서 알 수 있지 않다. 부처가 부처를 볼 수 없다. 자기밖에 없는데 자기를 볼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죽도록 알려고 한다.

  • 22-02-10 원정
    나는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의식입니다.
    나는 몸이 아니라 몸을 바라보는 의식입니다.
    나는 생각이 아니라 생각을 바라보는 의식입니다.
    나는 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바라보는 의식입니다.
    나는 이 순간 텅빈 의식으로 존재합니다.
    우주에 텅빈 의식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 22-02-11 원정
    지금껏 몰랐어요.
    생각과 감정의 노예로 살아왔음을....
    이젠 알겠어요.
    생각과 감정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 22-02-12 hanaloum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런데, 내 생각과 감정을 벗어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은 천천히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감정을 즐기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약 두 달 전에 좀 황당한 일, 즉 좀 화낼 일이 있었는데요.. 화가 한 3일 정도 가던데요..
    사건 현장에서 화를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없도록 표현하니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22-02-14 원정
    돈오점수라는 말이 있지요.
    단박에 깨닫지만 점진적 수행의 단계가 필요하다는 뜻.

    저는 화가 나는 것이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제가 그 화를 증폭시키지만 않는다면....
    저 또한 그 화를 증폭시키지 않기 위하여(화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많은 수행(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그렇게 되겠지만.....
    하나로움님은 잘 하시는 듯 싶어요.
  • 22-02-16 원정
    봉서산 김용철님(유튜브)
    뇌가 없어지는 멍 때림이 깨달아 있는 본래 나다.
    법공이 안되면 멍 때리기라도 해라.

    멍때려 전체를 통으로 보면서(통으로 본다는 것은 검은 눈동자가 촛점을 맞추어 보는 것이 아닌 흰자위로 본다는 것) 의식을 인식하면 그 의식이 진짜 나다.
    참으로 좋은 방법
  • 22-03-16 원정
    나는 지금 이 순간 현존감(의식)을 알아차리는(인식하는) 자로 존재합니다.

    신기합니다.
    왜 그렇게 알아차려지는지....
    그 자리가 평화롭고 고요해서 끌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제 약간은 그렇게 알아차리는 습이 든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되었든 신기합니다.
    저절로 공부가 되는 느낌입니다.
  • 22-03-16 원정
    행주좌와어묵동정....
    일상생활의 대부분 순간에 나는 의식을 인식합니다.

    내 존재 자체가 화두가 된 느낌입니다.
  • 22-03-17 여원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는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은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 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황지우



    기다림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린다는 것.

    어린 시절
    소녀시절
    스무 살
    서른 살
    .
    애타게
    애타게
    기다리던
    그 아이는
    그 소녀는
    그 처녀는
    .
    어디로 갔는가.

    기다리던 임은 끝내
    오지 않았고
    기다림에 목이 메어
    죽을 것 같았던 시절들.

    여전히
    애타고
    목이 메고
    안절부절못하는
    나는
    그때의 나
    지금의 나를
    불러들인다.

    그때 목이 메어도
    지금은
    괜찮지 않았냐고
    시간은
    무심히 흐르지 않았냐고.

    때로는
    잊히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지 않았냐고.

    그러니
    괜찮아
    괜찮아
    라고
    말해준다.
  • 22-03-17 원정
    번데기가 호랑나비가 되어 날아왔군요.^^
    여왕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 22-03-24 원정
    어젯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내가 "그래, 이 자리가 맞아. "라고 말하였다.
    나는 지금 이 순간 그렇게 확신하고 있다.
    지금의 의식 속에서 계속 머물면 변형이 올 것이라고....
  • 22-03-25 원정
    이렇게 공 속에서 오랜 세월을 존재감만으로 살아가다보면,
    모든 상이 지워질 것 같아.

    이걸 어찌 표현해야 하나.
    존재감만 있는데, 의식이 모든 것을 잡아끌어당기는 느낌,
    저절로 의식에 집중되는 느낌,
    두뇌에 에너지장(기)이 느껴지는 상태.
    마음이 다른 곳에 한 눈을 팔아 잠시 그 곳에서 떠나도 다시 그 곳으로 원상복구 되는 상태.
    마치 마법에 걸린 것도 같아.
  • 22-04-04 원정
    '공'을 '분별 이전의 자리'(생각하기 이전의 자리)라고 말하고 싶어.
    분별이 안되는 자리이므로 '공'이라는 말도 쓸 수 없으나 방편으로 공이라고 함.
  • 22-04-04 원정
    눈에 보이는 사물을 봄으로써,
    귀에 들리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몸에 느끼는 감촉을 느낌으로써,
    그 자리를 알 수 있다.
    삼라만상 모든 존재들은 그 자리를 알려주고 있다.
  • 22-04-05 원정
    그동안 나(?)는 생각과 감정을 적대시 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생각과 감정을 마치 별과 달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무심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각과 감정이 그 자리에서 나왔음을 그 이전보다 더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과 감정이 공함을 좀 더 명확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별과 달이 공한 것처럼....
    삼라만상이 그 자리에서 나왔다는 말을 좀 더 명확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 자리가 '심안'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옵니다.
    아침에 출근 중 '제3의 눈'이라는 단어를 보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그동안 그 자리가 의식과 에너지장으로 혼재되어 느껴진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심안'이라는 단어가 다가오네요.
    이젠 육안이 아닌 심안으로 살 수밖에 없겠네요.
    심안이 진정한 나니까요.
  • 22-04-05 원정
    제가 여기에 댓글로 제 상태를 계속하여 메모해 두는 이유가 있습니다.
    후학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
    원정 또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걸어갔구나!!!
    원정도 그 과정에서 많은 착각을 하였구나!!!
    깨어난 이후에도 왔다갔다 하는 면이 있구나!!!
    하는 점을 알려주고 싶은 면이 있습니다.
  • 22-04-05 여원
    ‘통으로 본다’ 전 ‘통으로 본다’를 ‘연기적으로 본다’라고 여깁니다.
    ‘연기적으로 본다는 것’이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기적으로 보는 단계’는 법안의 단계이고, 차원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은 ‘불안’이겠지요.
    ‘심안’ 제3의 눈은 ‘법안’에 이르는 길일까요?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 22-04-05 원정
    여원님의 댓글은 생각으로 느껴집니다.
    법안은 생각을 벗어난 자리에 있습니다.

    그 자리에 존재하면
    이 세상은 '통으로 보입니다'
    검은 눈동자로 어떤 사물에 초점을 맞추어 보지 않고, 흰자위 전체로 통으로 보게 됩니다.
    저는 관념적인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눈이 그렇게 됩니다.
    그 자리에 존재하면.....
    회광반조가 저절로 되니 그럴 수 밖에요.
    '통으로 본다'를 '연기적으로 본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관념적인 것입니다.
    그 말 자체가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제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와 여원님이 말하는 포인트가 다릅니다.

  • 22-04-05 hanaloum
    '지나가다'님의 글에서 '당시 현각은 TV에서 자신이 오직 행만 남은 경지를 설파하고 있었습니다.'라는 것이 궁금하여 방금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을 구매했습니다.

    '행', '실천'만 남는 단계는 어떤 것일까요? 자신을 '주시'하여도 이것이 '실천'으로 연결되려면 '주시' 자체로만으로 가능해보이지 않고 '주시' 이외에 큰 원동력이 더 있을 듯싶습니다. '주시' --> '행' 을 연결(-->을 의미함)하는 깨달음은 무엇일까요? 모든 것이 '무'이기 때문에 '행'밖에 남지 않았나요? 머리로는 이해가 갈 듯한데 깨달음으로는 오지 않네요.. 이게 뭘꼬?
  • 22-04-05 원정
    하나로움님은 생각과 감정을 바라볼 수 있으신 것 같습니다.
    생각과 감정을 바라보는 그 자리가 바로 그 자리입니다.
    의식, 알아차림, 참나.....
    그 자리에 존재하시면 됩니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생각과 감정을 자꾸만 알아차리는 것도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지금 하나로움님 상태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하나로움님이 느끼시는 주시자로 계속 존재하려고 하다보면, 의식이 저절로 드러납니다.
    그 의식이 저절로 드러나면, 생각과 감정의 노예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납니다.
    생각과 감정(생각과 감정은 분별덩어리)이 잘 보이거든요.
    생각과 감정 덩어리가 나라는 환상(아상, 에고)이거든요.
    저는 그 책을 읽어 보지 않았지만...
    행만 남았다는 의미를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 점수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깨어났지만, 에고로 사는 습이 남아 있어서 의식에 머무르려고 노력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의식이 드러나면 저절로 의식에 머무르게 됩니다.
    희한하게도 그렇게 됩니다.
    즉 저절로 수행이 됩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행만 남았다고 말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저는 이해합니다.
    그 자리에 적응하는 시간....
    아상의 시각에서 분별이전의 의식의 시각으로 전환되는 시간....
  • 22-04-05 hanaloum
    견성에 대한 검색에서 아래의 동영상을 찾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yqdKi7OJl-o
  • 22-04-05 원정
    하나로움님은
    주시자를 느끼기 때문에 주시자에 집중하면 빠를 것입니다.
  • 22-04-05 hanaloum
    고마워요.. 원정님
  • 22-04-06 여원
    심안이 무엇이든
    제3의눈
    제4의눈
    그리고 법안이 무엇이든
    그것은 뗏목입니다.
    어디에 이르고자 하는 뗏목이냐?
    연기(공)의 눈(의식)을 가지고자 하는 수단이지요.
    눈은 몸입니까?
    몸이 아닙니다.
    죽은 몸뚱이의 눈은 눈으로 작용합니까?

    검은 눈동자든
    흰 눈동자든지
    눈알 전체든지
    그 또한 법(연기/공)을 볼 수 없다면 통이 아니지요.

    연기(공)을 깨달았다면 그렇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시자를 불러내는 겁니다.
    있지도 않는 생각(관념)을 보고 있으면 그것과 떨어져 있어도 그 속에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영하10도 실내에서 따뜻한 공간으로 변모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차가운 공기를 쫒아내는 겁니까?
    아닙니다.
    난로를 켜는 것입니다.
    어두운 공간을 밝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둠을 덜어내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백날 생각(에고)을 소멸하는 과정에 집중해 보세요.
    그런 자리에 있어 보세요.
    계속 그것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생각은 현상이다’라고 바로 알아차리면 생각은 생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바로 사라집니다.

    뗏목 위에서는 제3의 눈이든 제4의 눈이든 밝혀야 겠지요.
    하지만 이미 연기(공)의 세계를 알았다면, 즉 빛의 존재를 알았다면 생각이 즉 어둠이 발생하면 연기(공)의 등불을 켜기만 하면 됩니다.
    비추어 보면 됩니다.
    단지.
  • 22-04-06 여원
    전 그렇습니다.
    주시자든
    행이 남는 거든
    보편을 깨닫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기도를 한다고 칩시다.
    그는 자신의 돈벌이성공을 위해
    혹은 자신의 자녀 입시나 직장 합격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도는 부분적입니다.
    세상은 나의 이익이 남의 손해를 담보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매사 그런 방식이지요.

    태양은 어떻습니까?
    태양이 떠오르면 누가 좋고 누가 나쁩니까?
    아닙니다.
    다 좋습니다.

    전 세상 모든 것이 연기로 이루어 있다고 주시자가 안다면
    보편으로 가는 실천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결국 자신을 위하는 길이니까요.
  • 22-04-06 hanaloum
    아침에 걸어오면서 견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명상이란 현재를 느끼는 것으로서, 코로 호흡을 느끼는 것으로 부터 시작을 합니다. 즉 현재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자신의 몸 중에서 코, 배의 움직임에 집중을 하지요.
    이것이 향상이 되면, 자신의 생각을 느끼는 것, 즉 자신의 생각을 바라보는 것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자신의 생각, 즉 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쳐다보려고 노력하니, 좀 졸려운 느낌도 듭니다.
  • 22-04-06 원정
    "보편을 깨닫기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여원님은 여원님의 생각을 계속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 생각에서 깨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 고통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의 본질은 생각이란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방편을 알차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고통에서 벗어날 것도 같습니다.
  • 22-04-06 hanaloum
    원정님의 말씀 중에서,
    "저는 아직 고통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의 본질은 생각이란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집착하지 않을 수 있는 방편을 알차차리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완전 동감입니다.
  • 22-04-11 원정
    우리는 보통 내가(에고가) 본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지 않겠다고 생각해도 저절로 보인다.
    우리는 내가(생각이)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듣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듣지 않겠다고 생각해도 저절로 들린다.
    우리는 내가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안느끼겠다고 생각해도 차가움과 뜨거움이 저절로 느껴진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것은 모두 그 자리(공, 중도, 부처, 하느님 등)에서 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그래서 삶은 그 자체로 공(신, 부처 등)의 몸짓이다.
    나(에고)는 삶에 항복할 수 밖에 없다.
    사실은 이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각(에고)은 삶의 중간에 개입하여 마치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 것은 착각이다. 우리의 에고는 자신이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것은 착각이다. 에고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에고는 고통을 느낀다.
    내게 다가오는 모든 삶은 공(신)의 뜻이다.
    거부할 수 없다.
  • 22-04-11 원정
    아상(나라는 생각이)이 완전히 녹아버린 자에게....
    과거가 현재가 미래가 있을까!!!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느낄 내가 있을까!!!

    그래서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그 자에게는 공(참나, 신, 부처, 하느님)으로만 남는다.
    애초에 에고(아상)란 착각덩어리.
  • 22-04-12 원정
    생각은 과거에 대한 생각, 현재에 대한 생각, 미래에 대한 생각이다.
    따라서 생각이 일어나면 과거, 현재, 미래가 일어난다.
    생각을 나로 동일시 하는 것이 아상(에고)이다.
    그러므로 아상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자리(생각이 나온 자리-분별이 일어나기 이전의 자리)에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다. 이게 금강경의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이다.
  • 22-04-13 원정
    제 글을 참고만 하세요.
    저는 저의 오류까지도 여기에 모두 남기려고 해요.
    세월이 흘러 다시 보았을 때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보려고 해요.
  • 22-04-13 원정
    여원님의 "백날 생각(에고)을 소멸하는 과정에 집중해 보세요.
    그런 자리에 있어 보세요.
    계속 그것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생각은 현상이다’라고 바로 알아차리면 생각은 생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바로 사라집니다." 이말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전 누구를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 제가 여원님을 단순히 해오한 사람이라고 오해한 것 같아요.
    " ‘생각은 현상이다’라고 바로 알아차리면 생각은 생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바로 사라집니다."는 해오한 사람이 할 말을 넘어선 것 같아요.
  • 22-04-14 원정
    이제 제가 '공'을 놓을 때가 되었나 봅니다.

    삶은 저절로 살아지는 것.
    내가 산다는 것은 환상
    내가 하는 것은 하나도 없지.
    인연대로 연기되어 벌어지고 있을 뿐.

    삶은 그대로 완전하고 삶만이 실체이다.
    손댈 것 없다.

    일할 때는 일해질뿐이고, 잠잘때는 잠재워질뿐이고, 아플 때는 아파질 뿐이고, 죽을 때는 죽어질 뿐이다.
    그냥 뿐이다.
  • 22-04-18 원정
    그 자리는 분별되지 않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다만, 방편으로 자성, 참나, 본성, 하느님, 부처 등등 이름을 붙일 뿐이다.
    모든 경전은 방편이다. 진실이 아니다.
  • 22-05-03 여원
    우리는 보통 내가(에고가) 본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지 않겠다고 생각해도 저절로 보인다.
    우리는 내가(생각이)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듣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듣지 않겠다고 생각해도 저절로 들린다.
    우리는 내가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안느끼겠다고 생각해도 차가움과 뜨거움이 저절로 느껴진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 것은 모두 그 자리(공, 중도, 부처, 하느님 등)에서 하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그래서 삶은 그 자체로 공(신, 부처 등)의 몸짓이다.
    나(에고)는 삶에 항복할 수 밖에 없다.
    사실은 이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각(에고)은 삶의 중간에 개입하여 마치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 것은 착각이다. 우리의 에고는 자신이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것은 착각이다. 에고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에고는 고통을 느낀다.
    내게 다가오는 모든 삶은 공(신)의 뜻이다.
    거부할 수 없다.
    ……………………………………………………………………………
    마음에 담아 두지 않는 것은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마음에 없으면 없는 것입니다.
    보고 듣는 다는 것도 눈과 귀가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듣는 귀가 있고, 보는 눈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로 들을 수 있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볼 수 있나요?

    객관적인 실체는 없습니다.
    다 내가 보니까 있고, 내가 듣고 판단하니까 있는 것입니다.
    유물론에서는 말하죠.
    유심론에서 말하듯이 일체유심조가 아니다. 마음에서 나오지 않아도 객관적인 실체들은 그대로 있다고요.
    산이 있고, 들이 있고, 강이 있고 바다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진짜 있는 것일까요?

    나라는 조건을 가진 존재가 보고 듣듯이 똑같이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똑같이 보여지고 들릴까요? 빛의 속도를 가진 존재가 있다고 했을 때 나처럼 똑같이 산과 들이 산으로 보이고 들로 보일까요?
    아마도 그들의 눈에는 빛으로 보일 것입니다.
    하나의 구체적인 형태가 아니고요.

    차가움과 뜨거움도 고정된 게 아니죠.
    그것의 객관적인 조건도 그것을 느끼는 조건과 교차했을 때 수천수만 가지의 현상으로 달리 나타납니다. 나타난 현상조차도 한순간마저 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럴 조건을 구비했을 때 다만 그 조건에 반응하는 현상이 나타날 뿐입니다. 번개나 벼락처럼 말입니다. 나의 조건과 그의 조건이 인연이 되었을 때 벼락이 치는 것이고, 어느 한쪽의 조건이 모자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진공묘유로써 오분 대기조가 되는 것이죠. 그렇지만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조건 되는 또 다른 나는 어떤 현상을 보고 들을 것입니다.

    사실 현상은 누군가에게는 공이며
    누군가에는 유이며
    누군가에는 무이며
    누군가에는 가능성으로서의 진공묘유이며
    누군가에는 그 어떤 무엇입니다.
    위치와 차원 등의 조건에 따라 천차만별이죠.
    이것이 객관적인 실상이라는 세계의 나투어짐입니다.
    소위 나라는 존재와 무관하게 존재한다고 하는 그 실상의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진공묘유이며
    내가 공이며
    내가 유이며
    내가 무입니다.

    내가 없으면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가 없어도 일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나 따로
    공 따로
    그런 법이 없습니다.

    유심론은 실상이고, 유물론은 허상일까요?
    둘 다 방편설의 허상으로서는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즉, ‘내가 할 일이 없다’라든가
    ‘공이 모두 한 일이다’라든가
    하는 것은 경계해야 될 것입니다.

    이또한 경계해야 될 말이지만 굳이 말하라면,
    '내가 하는 것이 공이 하는 것이고, 공이 하는 것이 내가 하는 것이다'입니다.

    (말하는 순간 바로 어긋났습니다,ㅋ)
  • 22-05-03 원정
    '색'으로만 살아온 초심자에게는 ...
    우선 '공'을 느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공을 느끼고 안정화되면 저절로 수행이 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공즉시색'....

    지금 제게는 '오직 모를 뿐'
  • 22-05-06 원정
    참으로 놀라운 일이에요.
    과장하면 도무지 한 순간도 삼매상태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네요.
    몸을 포함하여 허공 전체가 나네요.
    굳이 특별히 명상을 할 필요가 없군요.
    삼라만상이 정말로 하나군요.
    원래 이게 정상인데....
    분별심이 이걸 가로막고 있었네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의미를 알 것 같네요.
  • 22-05-06 원정
    이게 바로 살아서 부활하는 것이군요.
  • 22-05-06 여원
    깨달은 이는 깨달음을 늘 응시하고 있다.
    깨닫고자 하는 이는 깨달음에 방해되는 것을 늘 응시하고 있다.
  • 22-05-06 여원
    天上天下唯我獨尊
    예전에는 싯달타 자신 혹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가리킨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에는 ‘삼라만상은 하나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립니다.
  • 22-05-07 여원
    天上天下唯我獨尊
    (삼라만상과 하나인)내가 주인이다.
    삼라만상이 나다.
    내가 삼라만상이다.
    나의 본성이 삼라만상이다.
    삼라만상이 나의 본성이다.

    나와 떨어져 있는 ‘신’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다.

    고로 내가 주인이다.
    내가 주인이다.
    내가 주인이다.
  • 22-05-16 원정
    저는 십우도의 목우 쯤으로 보입니다.
    제 글에 오류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 오류를 그대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제가 지니고 있으므로 제 글은 참고만 하세요.
  • 22-05-24 원정
    저는 요즘
    무심선원 김태원 원장님, 법상스님, 봉서산 김용철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출퇴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출퇴근 길이 하천을 끼고 걷는 길인데 일부는 나무들이 가득한 오솔길도 있습니다.
    좋은 법문을 듣는 것이 매우 좋은 수행(?)임을 알겠습니다.
    저절로 듣게 됩니다. 의도하는 바가 없이 저절로 듣게 되어요.
    삶의 1번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잠자기 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루에 3-4시간은 법문을 듣는 것 같아요.
    생각(분별심)이 저절로 쉬어지는 것이 좋아요.
  • 22-05-27 원정
    틈틈히 법문을 들으면서 세월을 보낼 뿐입니다.
    때론 자연의 법문도 듣고.....
  • 22-06-15 원정
    진정한 나(순수의식, 전체로서의 나)는 이미 완벽하여 깨달을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다.
    손댈 것 없다. 번뇌(에고, 분별)가 사라져서 완벽한 것이 아니라 번뇌가 있는 그 자체로 완벽하다. 번뇌가 보리이다. 그래서 수행할 것도 없다.
    그러나 많은 세월을 에고(분별)의 습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 업식이 녹아내릴 때까지는 여전히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물론 고통을 받는 것은 진정한 나가 아니라 에고의 나이다. 이 때 굳이 수행을 말한다면 순수의식(진정한 나)에 머물면 된다.
    그런데 한 번 순수의식에 제대로 계합하게 되면 그 이후로는 저절로 그 자리에 머물게 되고 저절로 업식이 녹아든다. 저절로 수행이 되고, 저절로 공부가 된다.
    단지 세월이 필요할 뿐이다.
    이렇게 살다보면, 에고가 아닌 전체로 살게 될 것이다.
  • 22-07-01 원정
    생각을 잘 살펴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닌데 예전보다 생각(에고)의 움직임이 더 잘 보인다.
    전에는 좀 더 빨리 완벽하게 그 자리에 순도 100%로 계합하고 싶었으나 이젠 그런 생각이 줄어들었다.
    100%로 계합하고 싶은 그 것도 생각(에고)이니까...
    천천히 흘러가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뇌가 그대로 깨달음이거늘...
    급격함 보다는 자연스런 것이 더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이대로 모두 좋다.
  • 22-07-01 원정
    모든 사람들은 이미 깨달아 있다.
    본인 혼자 생각으로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생각의 노예로 생각 속에서 살고 있다.
    깨달음은 생각과는 무관하다.
    생각 이전에 존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생각으로 깨달음을 구한다.
    깨달음은 생각 이전의 것인데도 말이다.
    깨달음은 생각과 무관하게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생각을 내어 깨달음을 찾으려고 하니 외견상 깨달음이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 22-07-04 원정
    순수의식을 이해한 이후 저절로 생각이 알아차려지는 면이 있다.
    그런데 난 요즘 순수의식으로 그저 존재하려고 할뿐 억지로 알아차리려고 하지는 않는다.
    알아차리려는 마음도 순수의식에서 이미 나온 마음이기 때문이다.
    알아차려지면 그저 그런가보다 할 뿐....
  • 22-10-11 원정
    삶은 인연 따라서 스스로 알아서 흘러가고,
    그래서 우리는 원래 할 일이 없는 무사인(부처)인데,
    分別을 하여 집착을 하니 그 사실을 잊어버렸네요.
    자승자박.
    그 사실이 이해는 되지만 그 묶인 것이 풀리려면 참으로 많은 세월이 필요할 듯 싶어요.
  • 22-10-11 hanaloum
    요새 신약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이 대부분 수동적인 것을 요구하더군요.
    예로 '오른쪽 빰을 치거든 왼 빰을 내밀어라'.. 등과 같이 보복성이 없이 처분은 하나님이하고 너는 그냥 손해를 보라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보복이 분별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 22-11-03 원정
    分別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창조했어요.
    집착하는 것을 통해서요.
    집착의 대상만을 바꾸어가면서 살아왔어요.
    미혹도 벗어나고,
    깨달음도 벗어나고,
    여기에는 열반도 해탈도 없어요.
    그냥 일이 없을 뿐...
  • 22-12-15 원정
    삶은 인연 따라서 연기되어 저절로 돌아가고,
    거기에 나(에고)는 없다.
    애초에 나(에고)가 뭔가를 결정하는 일은 없다.
    생각은 저절로 일어난다.
    내(에고)가 생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내(에고)가 하는 일은 실상 아무 것도 없다.
    에고가 한 생각을 잡고 내 생각이라고 내가 결정하였다고 착각을 하고 있을 뿐...
  • 22-12-16 김춘봉
    근대 철학을 연 데카르트가 말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니까
    ‘데카르트’가 맨 처음 말한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하여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도 비슷한 말을 한 바 있다고 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생각이 많은 아이” 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지금도 생각의 반추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우연과 필연의 혼재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현대 문명을 일으킨 - <생각의 씨앗>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