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다는 것에 대하여
뭐에서 깨어나지?
생각덩어리에서 깨어나는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속에 있으면서 '깨어나야지' 하고 생각해.
마치 꿈속에서 주인공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 속에 있으면서 말입니다. 깨어난다는 것이 무슨 일인지 모르면서요. 꿈 속의 주진공은 여전히 꿈속에 있을 뿐)
생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생각속에서 비로소 깨어날 수 있지.
아상 속에서 사는 것이 무지야.
무지에서 깨어나라는 것은 아상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야.
생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생각을 바라보는 자로 존재할 수 있을 때,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
생각속에서 깨어나려고 노력해도 생각 속에 있는 거야.
모든 것이 생각이야.
네가 공을 느꼈다고 느낀 순간 아마도 넌 생각을 벗어났을 거야. 그 순간....
그리고 깨어남(분별 이전의 자리, 공)은 모르는 마음이야.
안다고 생각할 때 그건 생각속에서 분별하고 있는 것이야.
오직 모를 뿐.
생각은 꿈과 같은 거야.
사람들은 한 평생 자기가 지어놓은 생각 더미에서 살다가 가지.
꿈을 꾸다 가는거야.
그래서 꿈에서 깨어나라는 것이야.
생각 속에서 깨어나라는 것이야.
분별심 즉 생각은 아는 마음이야.
분별 이전의 그 자리 즉 생각이 일어나기 전의 그 자리, 그 자리는 모르는 마음이야.
그 분별 이전의 자리가 공이야.
분별심은 모르는 것도 안다고 착각해.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그러나 분별심 즉, 생각은 생각일 뿐.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지.
삶은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스스로 알아서 돌아가지.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교통사고가 났을 때
잠깐이지만 공을 느꼈지.
그러나 많은 세월 그게 뭔지 몰랐지.
작년에서야 나는 비로소 그 메커니즘을 이해했지.
어쩌면 너도 지금 이 순간 비로소 준비된 지도 모르지.
그 메커니즘을 몸으로 이해할 준비 말이야.
경전은 모두 헛소리 일수도 있어.
왜냐?
각자 경전을 이해한 수준만큼(세상을 이해한 만큼) 경전이 해석되거든.
그리고 근원적으로는 분별이전의 자리(공)는 분별덩어리인 말이나 언어로 설명될 수는 없는 것이거든.
경전은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상을 추정해 볼 수 있는 방편이거든.
(그래서 부처님도 단 한 번의 설법도 설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지. 물론 아상이 없으니 말한자도 듣는자도 없었겠지만)
사과 그림을 보는 자(사과 맛을 설명한 글을 읽은 자)가 사과를 한 입 깨어 문 사람이 느낀 사과 맛을 알 수 있을까?
그래서 경전을 이리저리 해석해 봐야 그 것은 그냥 사과 그림을 보는 것일 뿐이야.
사과 맛을 알 수는 없지.
너도 이제 사과 맛을 볼 때도 되지 않았니?
오래 전에 우연히 맛 본 기억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