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있으라는 말의 오해 또는 착각에 대하여8

22-04-20 원정 54

깨어있으라는 말의 오해 또는 착각에 대하여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 중에는 늘 깨어있으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오해를 많이 일으키는 지극히 불필요한 말이다.

 

잠자면서 꿈꾸고 있는 사람에게 깨어있으라는 말을 하는 것은 계속하여 잠속에서 꿈꾸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미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그 말은 불필요하다.

 

만약에, 깨어있다는 말을 ‘법을 딱 붙들고 정신 줄을 바짝 차리고 끄달리지 않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분별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유의법이다.

공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통하면 저절로 깨어나게 된다. 내가 깨어있는 것이 아니고, 허공이 깨어있는 것이고, 우주가 깨어있는 것이다. 사람은 없어지고 삼라만상이 깨어 있는 것, 그게 진정으로 깨어있는 것이다.

내가 깨어 있겠다는 것은 나라는 망상이 유의법으로 뭔가를 조작하고 있는 것이다. 수행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망상을 하고 있다. 자기가 뭘 하면 될 수 있는 것처럼.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단지 잠에서 깨어나면 되는데. 그래서 무위법인데.

 

깨어있으라는 말을 뭔가를 열심히 해야 되는 것(예를 들어 의식이 또랑또랑하게 존재하려고 노력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에게(실제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오매일여의 방편을 쓴다. 깊은 잠 속에서도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그게 아님을 알아차리라고.

그러나 가끔 어떤 사람은 오매일여를 오해하여 잠자면서도 정신을 바짝 차리려고 노력한다. 어리석게도 그런 불가능한 노력을 하기도 한다.



** 이 글은 무심선원의 김태완 선원장의 법문을 듣고 내 맘대로 정리한 것임

  • 22-04-20 여원
    왜 팔만대장경이 존재하는지 이해할 수 있겠다.
    이다지도 오해와 곡해가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그래도 불가능에 가깝더라도 소통을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너는 나이고, 내가 바로 너인 것이 진리임을 알기 때문이다.

    ‘깨어있음’은 마음 턱 놓고 있지 말란 말이다. 그 말은 믿는 구석을 두지 말라는 거다. 왜냐? 무언가를 주인으로 믿고 있으면 통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즉, 텅 비워 두란 말이다. 정해진 주인은 없으므로 뭐든 흘러 보내라는 말이다.

    어떤 것도 통할 수 있도록 하란 말이다. ‘깨어있음’은!
    진리의 말은 법으로 뜻을 새겨야 한다.
    "…=성품=본래면목=공=연기=중도=무아=참나=주인공=부처=신=반야진리=깨어있음=…"
  • 22-04-20 여원
    참으로 ‘나’를 버리기가 그토록 힘든 것인가.
    깨어있는 것은 ‘나’가 깨어있는 게 아니다. ‘공’이 깨어있는 거다. ‘공’은 늘 그 자리에 있다. 내가 깨달은 자리로 돌아가서 있으라는 말이다.
    1초 부처=1초 깨어있음
    2시간 부처=2시간 깨어있음
    8시간 부처=8시간 깨어있음
    24시간 부처=24시간 깨어있음
  • 22-04-20 여원
    머리로는 ‘공’하면서도,
    끝끝내 ‘나’를 버리지 못하는 까닭에
    자꾸만 ‘내’가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공’이라 적고서, 정작 ‘나’를 설명하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 22-04-20 원정
    저의 체험은 이래요.
    분별(생각)만 쉬면 생생하게 깨어 있는 그 자리가 드러나요.
    마음을 턱 놓고 쉬면 생생하게 깨어있는 그 자리가 드러나요.
    생각(아상, 분별) 속에서 깨어나는 겁니다.
    저는 오직 모를뿐입니다.

    참고로, 견성된 상태여서 저절로 텅 비워지면 굿, 텅 비우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하면 배드.
    참나의식으로 존재하면 저절로 텅 비워진 상태임.
  • 22-04-20 원정
    "1초 부처=1초 깨어있음
    2시간 부처=2시간 깨어있음
    8시간 부처=8시간 깨어있음
    24시간 부처=24시간 깨어있음"

    이 것은 아마도 견성하지 못한 분들을 위하여 팃낫한 스님이 방편으로 말씀하신 것일 겁니다.

    팃낫한 스님이 한 번 아상(생각)에서 깨어나면 더 이상 깨어날 일이 없다는 사실을 모르셨겠습니까?
    아상이 환상이란 사실을 한 번 정확히 알게 되면, 다시 아상에게 속겠습니까?
  • 22-04-20 여원
    생각을 쉬면 드러나는 자리가 그 자리인가요?
    그런 생각을 가지신 듯 합니다.

    1초 부처=1초 깨어있음
    은 견성하지 못한 단계가 아닙니다.
    견성한 이후입니다.

    1초라도 부처로 깨어있는 데 부처이지요.
    부처라는 독립체가 있습니까? 어디?
    흘러가는 법이 잠시 1초 부처였다가 나머지는 아닌 것이지요.
    대체 어떤 이가 100%부처인 존재가 있습니까?
    부처에도 또한 자성이 없거늘.

    생각이 있고
    생각이 없고
    에 의해서 견성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계속 그런 전제를 깔고 가시는 듯 합니다.

    부처 또한 고정된 어떤 독립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봄에는 연두잎이 여름에는 짙은 녹색이었다가 가을이면 단풍들고
    겨울에는 앙상해지는 것처럼 그저 그러할 뿐으로 흐르는 것이고 통하는 것이지요.

    어떤 하나가 있어 분별하고 쉬고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하여 ‘공’이라 적고, ‘나’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기적’으로 일어난다 하셨는데 법은 대상이 없습니다. 한 몸입니다. 내가 한 생각하면 우주가 한 생각하는 것이고, 내가 한 걸음 내딛으면 우주가 한 걸음 내딛는 것입니다. 한 번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지요. 먼지 하나 조차도.
  • 22-04-20 원정
    여원님
    그런 자리가 있어요.

    그 자리에 있으면 생각의 실체가 저절로 알아차려져요.
    어떤 특정 사건으로 인하여 발생되는 원초적인 고통은 어쩔 수 없겠지만(그 것도 영원하지 않지요) 그 이후 생각(에고)으로 인하여 유발되는 2차적인 고통은 처음부터 유발되지 않거나 유발되어도 거의 힘을 잃어요. 그래서 불가에 고집멸도라는 사성제가 있는거예요.

    그 자리는 인위적인 자리가 아니에요.
    나(에고)가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자리에요.
    그런 자리가 있어요.
  • 22-04-20 원정
    여원님이 쓰신 글이 진실인지 여원님 생각인지 자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