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빠르게 견성하는 방법?
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때 바라보는 대상 그 자체에만 관심이 머물지 바라보는 주체에는 관심이 없어요.
우리는 소리를 들을 때 소리 그 자체에만 관심이 머물지 소리를 듣는 자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우리는 어떤 느낌을 느낄 때 그 느낌 자체에만 집중하지 그 느낌을 느끼는 존재에게는 관심이 없어요.
보는 주체, 듣는 주체, 느끼는 주체는 한통속이에요.
그 주체(차원)는 생각으로 분별하기 이전의 존재에요.
생각으로는 그 존재에 계합하기 힘들어요.
지식, 서적, 언어, 문자는 모두 분별(생각) 덩어리에요.
그래서 그런 것에 많이 머문 사람들은 이 자리에 계합하기가 오히려 더 힘들어요.
그래서 성철 스님이 제자들에게 책을 보지 못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반야심경, 금강경도 깨닫고 보니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정도의 것이지, 반드시 진리라고 볼 수도 없어요. 말이나 문자로 표현되면 벌써 본질에서 어긋나고 그 경전을 보는 사람들은 말이나 문자에 갇혀 오해하게 되거든요.
그 자리는 생각으로 분별하기 이전의 자리이기 때문에, 법문을 들을 때는 큰 스님의 이야기(스토리-이미 분별된 이야기)에 끌려가면 안돼요. 큰 스님의 이야기(스토리)에 끌려가지 말고 그 이야기를 듣는 자로 머물려고 노력해야 해요. 큰 스님의 이야기에 끌려가면 생각으로 분별을 하게 돼요. 그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지 깨어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그러다가 가끔은 어쩔 수 없이 스토리에 끌려가면서 어떤 균형된 정보도 얻을 수 있기는 하겠지요.
따라서 개울의 시냇물 소리도 매우 좋은 법문이에요. 스토리가 없어서 더 좋은 법문이에요. 그 시냇물 소리에 머물지 마시고, 그 시냇물 소리를 듣는 자로 머무세요.
아기가 우는 소리, 싸우는 소리, 천둥 소리, 전쟁에서 포를 쏘는 소리 ... 자연의 모든 소리가 법문이에요. 그 모든 소리가 우리를 깨어나게 하는 소리에요.
보는 것도 그래요.
모든 삼라만상은 우리를 깨어나게 도움을 줍니다.
단지 그 사물을 바라보는 자로 존재하기만 한다면....
만약에, 모든 삼라만상을 바라보는 자로 존재하려고 노력한다면, 모든 소리를 듣는 자로만 존재하려고 노력한다면, 좀 더 빠르게 그 자리에 계합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렇게 존재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어떤 것이 드러나요. 책상 앞을 멍때리면서 바라보는 자로 존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집중이 중요해요.
참고로, 그 자리에 존재해보면, 멍 때린 상태에서 통으로(검은 눈동자로 특정하여 한 사물을 보지 않고 흰자위 전체로 사물 전체를) 세상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위 내용은 매우 중요한 것 같아서 제가 이 글을 썼지만....
앞으로는 이런 글을 자제하고 싶어요.
앞으로 많은 해를 제가 혼자 공부해야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