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광반조4

23-11-22 원정 60

회광반조란 알아차림(순수의식, 불성, 참나, 본성, 공, 깨달음, 텅빈충만, 이것, ....)을 알아차리는 것

알아차림을 알아차리려면, 알아차림을 대상(모양)으로 볼 수는 없다.

차라리 알아차림으로 존재한다는 느낌에 가깝다.

알아차림에 의지하여 계속하여 공부를 해 갈 것 같다.


지금 나의 상태는....

알아차림이 저절로 알아차려지고 있는 상태

알아차림으로 존재하고 있는 상태.


2023. 10. 26. 작성한 글

  • 23-11-28 여원
    알아차림에 의지하여 계속하여 공부를 해 간다?
    누가?
    대단한 영성(자아)이?
    자신의 영성을 드러나게 하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왜?
    어디에 도달하려고?
    아라한이 되려고?
    부처가 되려고?
    자아가?
    무슨 도리로?

    자아가 비었다는 것을 보는 것이 연기의 깨달음이고,
    자아를 소멸시켜 가는 것이 연기의 수행이고,
    궁극에는 하나 되는 것.

    영성을 따로 떼어낸다든지
    자아가 알아챈다든지
    마음이 따로 있어 챙긴다든지
    하는 것은
    연기의 도리와 맞지 않다.
  • 23-11-28 원정
    석가모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등명 법등명(自燈明法燈明) 자귀의 법귀의(自歸依法歸依)”라고 말씀하셨지요.

    여원님은 석가모니를 이렇게 비방하였어요
    “알아차림에 의지하여 계속하여 공부를 해 간다?
    누가?
    대단한 영성(자아)이?
    자신의 영성을 드러나게 하고, 그것을 알아차리고?
    왜?
    어디에 도달하려고?
    아라한이 되려고?
    부처가 되려고?
    자아가?
    무슨 도리로?”라고 ....

    공부하다 보면 진정한 자기(참나)는 이것(알아차림, 공, 생명, 불성....)임을 깨닫게 되요.
    제가 여원님께 여원님이 아는 공을 설명해 보라고 말하였지요.
    공을 체험해 본 사람은 비슷하게나마 그려낼 수 있어요.
    왜냐?
    지금 제가 자판을 치는 이 순간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으니까.
    여원님은 공에 대하여 엉뚱한 말만 하였어요.
    여원님의 공은 어떠한 실체도 없는 공(무기공, 빌공)이에요.
    공은 그런 것 아니에요.
    왜 '텅빈 충만'이라는 말이 있겠어요.

    여원님은 뭔가 자신이 안다는 생각에 제가 어떤 말을 해도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요.
    그런데 여원님이 공(텅빈 충만, 불성, 생명, 알아차림)을 체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여원님 자신이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여원님은 공(텅빈 충만, 불성, 생명, 알아차림)에 대하여 마구 이야기 하나요.

    여원님이 공(텅빈 충만, 불성, 생명, 알아차림)을 체험할 때까지는 공에 대하여 말을 조심해서 하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그동안 여원님이 상생의 세상에 뿌려놓은 에고를 느껴보세요.
    사과 그림 그만 그리시고 사과 맛을 한 번 보세요.

    저는 앞으로 상당기간 여원님의 글에 답글을 달지 않을 생각이에요.
  • 23-11-28 여원
    무기공
    아공
    법공
    난 이런 말 안 쓴다.
    쓸데없는 말들이다.

    내가 뭔가 안다는 생각이 아니라
    위없는 붓다의 연기법에 대한 확신이죠.

    알아차림
    마음 챙김
    주시자
    불성이 있다는 것과
    순수의식이라는 것과
    지와라는 것과
    브라만이라는 것과
    ....
    차이를 느끼지 못함.
  • 23-11-28 원정
    '위 없는 붓다의 연기법'이 아니라
    '여원님이 생각하는 붓다의 연기법'이죠.
    생각이 원래 그래요.
    여원님은 생각을 쉬어본 적이 없으니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고.....
    여원님이 느끼지 못한다고 실체가 또는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에요.
    앞으로 상당기간 답글을 달지 않아도 이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