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2000년 경에 내가 뭔가 다 이해하였다고 생각하였다.
도덕경, 금강경, 반야심경, 성경, 라즈니쉬, 마하리쉬.....
그냥 이해가 되었다.(지금 와서 보니 지금의 이해와는 다른 면이 있지만)
그렇게 이해가 되었는데, 그렇게 지식은 늘어갔는데, 삶의 변화는 없었다.
그러다가 '도'니 '깨달음'이니 하는 말들이 싫어졌고, 그런 글들을 읽거나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내용들이 내게서 쏘옥 빠져나갔다.
많은 세월이 흘러서 2년 6개월 전에 '주시자'가 내게 다가왔다.
지나다가님이 주시자에 집중하고 의문을 가지라고 권유하셨다.
그러다가 그 자리(공, 참나...?)에 계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자리를 잃어버렸다 찾았다 반복하였다.
아주 미세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농도의 문제이지 항상 그 자리에 계합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말할 때나, 움직일 때나, 걸을 때나, 앉아있을 때나, 누워있을 때나 항상....
그 자리는 도저히 잃어버릴 수가 없는 자리이다.
그 자리(태양)는 생각의 구름에 가려 있을 뿐이었지 항상 존재하고 있다.
생각이 쉬어지면 자연스럽게 알라차려지는 자리이다.
사실 그 자리는 생각이 떠오르든지 떠오르지 않든지 생각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자리이다.
내게는 마음공부하는 도반이 여럿 있다.
그 중에 몇몇에게 항상 관심이 있으나 뭐라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시절인연이 아닌 것 같아서....
이 공부는 쉬는(비우는) 공부인데, 깨달음을 이해로(분별로) 공부하고 있다.
사실 정 반대로 공부하고 있다.
그래서 본질에서 더 멀어지고 있는데, 본인들은 공부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공부는 그 자리(공, 불성, 깨달음, 참나 ....?)를 빨리 체험한 후 그 자리에 계속하여 계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자리에 계합하면 할 수록 더욱 확연해진다.
불경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뀐다.
깨닫기 전에 책을 보지 말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나는 그 도반들을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도반들은 오히려 나에게 깨달음을 알려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음은 참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