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 도신(道信)의 수일불이(守一不移)와 5조 홍인(弘忍)의 수본진심(守本眞心)4

24-02-27 원정 71

그동안 나는 이 空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공부가 됨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아미산 블로그에서 아래 글을 찾았다.

나는 그동안 ‘수일불이(守一不移)’와 ‘수본진심(守本眞心)’ 수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래는 아미산 블로그의 핵심내용이다.  아미산님께 감사함을 전한다.

다만, 이 글은 空을 실제로 체험한 이후에야 마음에 와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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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신 대사의 선사상은 그가 찬술했다고 하는 <입도안심요방편법문(入道安心要方便法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도신은 이 책에서 일체의 모든 인연을 멈추고 망상을 쉬게 하고 심신을 놓아버려서 항상 자기의 청정한 본심을 보는 ‘안심(安心)의 대도(大道)를 깨닫는 가르침’을 강조하면서,‘안심의 대도’를 깨닫는 다섯 가지의 구체적인 방편문(좌선행)을 설파했다.

그 다섯 가지 방편문의 정수는 ‘수일불이(守一不移)’이다.

그리하여 도신 대사는 말했다. “수일불이라는 것은, 훤하고 깨끗한 눈으로 정신을 가다듬어 한 물건을 들여다보고 밤낮의 구별 없이, 힘닿는 데까지 노력해 언제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대 마음이 흐트러질 듯할 때는 지체 없이 다시 가다듬어서 마치 새의 발을 묶어놓고 날아가려 하면 도로 잡아당기고 또 날아가려 하면 도로 제자리로 잡아당기듯이 온종일 지켜보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사라지고 저절로 마음이 안정될 것이다.”

수일불이(守一不移)란 지킬 수(守), 하나 일(一), 아니 불(不), 옮길 이(移), 그래서 하나를 지켜서 옮겨가지 않는다.

하나를 지켜서 절대 흔들림이 없다는 말이다.

공정한 눈(空淨眼)으로 주의 깊게 일물을 지켜보고(看一物), 주야를 불문하고 힘을 다해 늘 움직이지 않는다(不動)는 말이다.

하나를 지키면서 옮기지 않는다는 ‘수일불이’는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의 화합인 신체가 무상함을 깨닫고 공(空)을 관하는 한 가지 법을 시종일관 수행한다는 말이다.


도신 대사의 ‘수일불이’의 법문은 뒷날 그의 제자인 5조 홍인(弘忍)에 계승돼서 수본진심(守本眞心)의 사상으로 전개됐다.

홍인의 가르침 핵심은 수심법문(守心法門)으로 수본진심(守本眞心)이다.

스승 도신의 수일불이守一不移)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 본래 마음을 지켜 행주좌와(行住坐臥) 중에도 항상 본래의 진심을 지켜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마음으로, 일체만법이 스스로 마음을 떠나지 않도록 간직하는 것이다.  

“초심자가 좌선을 배울 때에는 <관무량수경>에 의지해, 단정히 앉아 생각을 바로 하고, 눈을 감고 입은 다물고, 마음으로 앞쪽을 바라보며 적당한 곳에 하나의 태양의 모습을 만든다. 진심을 꽉 붙들고 생각 생각에 머물지 않으면, 호흡이 잘 조절된다. 호흡을 거칠거나 미세하게 하지 말아야 병고(病苦)가 되지 않는다. 그대들이 좌선할 때에는, 평평한 곳에서 몸을 단정하게 하고 바로 앉아 몸과 마음을 풀어 놓고, 하늘 끝 저 멀리에 한 일(一)자를 지켜보라. 그러면 저절로 진척이 있을 것이다. 만약 초심자가 여러 가지 반연하는 생각이 많으면, 곧바로 마음속에서 일자(一字)를 바라보라. 마음이 깨끗해진 뒤에 앉아 있으면, 그 경지는 마치 끝없는 광야 속에서 멀리 하나만 우뚝 솟은 높은 산꼭대기 확 트인 곳에 앉아 있어서 사방 어디를 돌아봐도 끝이 없는 것과 같다. 앉을 때에는 세계 가득히 몸과 마음을 풀어 놓고 어느? 경계에 머물면, 청정법신(淸淨法身)의 끝없는 모습이 바로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했다.

<블로그 아미산에서->

  • 24-02-29 원정
    일정한 시절이 지나면
    지킬 것도 없다는 사실을 저절로 알게 된다.
  • 24-02-29 모모
    저도 수일불이.. 수일진심..
    읽으며..통찰해 봤습니다.^^
    수일불이..
    하나를 잘지켜라. 둘이 아니다.
    수일진심.,
    하나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마음(진리)이다.

    전. 이렇게. 풀어봅니다.

    ....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것은..
    물과 물이..물과 우유가 만나 합해지는 것처럼..하나로 융합한다고 하네요.

    물과 기름이 만나면..하나로 융합이 안되고..둘로 분리됩니다..

    진리(마음.의식) 또한..이와 같아서..
    내부 외부의 그 어떤 다르마(마음.의식)와 만나도 늘.. 하나로 융합되어 함께 움직여 버립니다.
    절대.. 보는 마음 따로. 보이는 마음 따로..이원성으로 나타나지는게 아니지요.
    그래서 진리는 그대로 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마저도..있다(유)..없다(무) 로 말할수. 없지요.

    현상이란..
    드러남(색) 이란..
    있다 하는 순간 과거요.
    그렇다고 없다 하면..드러난것이 있으니.. 또한 없다고 할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또한ㆍ공ㆍ하다..라고. 말합니다.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니고..그저. ㆍ공ㆍ하다. 이야기 합니다.

    조건이 갖춰져 드러나기도 하고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 드러나지 않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꼭..없다 라고 말할수도 없지요.

    요즘 뒷산에 올라갈때마다..생강나무를 유심히 보는데..
    얼마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노란..꽃봉오리 들이 맺힌게. 눈에 띱니다.

    얼마전까지도 없던 꽂봉오리가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꽃이 필 조건이 형성되니까..갑자기 툭툭..나뭇가지 속에서 튀어 올라옵니다.

    분명 무..였는데..갑자기 조건이 맞춰지니..유가 생겨나 버렸지요.

    그래서 그 꽃봉오리를 자세히..가만히 바라보았 습니다.

    나의 이 바라봄이..생강 꽃나무와. 하나로..만나 융합되는 이 현상..
    .보고 있는 행위는 . 보여지는 대상 이 있어 성립합니다.

    보여지는 현상(드러남) 은..
    보는 행위 주체가 있기에. 또한 성립합니다.
    그러니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은..
    물과 우유가 하나로 융합되어..분리할수 없는 것처럼..
    그대로 하나입니다.

    생강나무 꽃은..그렇게 나의 의식.마음 과. 하나로 융합되어...현상 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하나를 어떻게 둘로 분리 할수 있을 까요.

    그것이 또한 무아입니다.
    나의 의식. 마음이 생강나무와 만나는 순간..의식은. 이 몸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닌.. 그대로 생강나무와 일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나라는..마음.의식이..이 몸안에서. 살고 있어서...눈이라는 기능을 통해 생강나무를..보고 있었다면..
    보는 주체 따로..보여지는 대상 따로..
    둘이 되었겠지만..

    그렇다면 그 둘은 물과 기름 처럼 절대 융합되지 않는 ㆍ경계ㆍ가 뚜렷히 존재할 것입니다.

    그것은..또한 무아도 될수 없습니다.
    무아란..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 라는 것이고.
    그건 다른말로..모든 것이 다 나다.
    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생강나무와. 내가.. 안에서 보는 마음.의식 따로..보여지는 대상 따로..라고 한다면..
    그것은 무아 라고 볼수 없지요.

    모든 것이 나라는 것은..보여지는 대상과의 합일상태.
    곧 융합 이 이뤄진 상태이기에..
    생강나무를 보고 있는. 나의 의식과.
    보여지는 생강나무의 의식을..
    이것이 너이고. 저것이 나이고..
    따로 떼어내고 분리할수 없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통틀어 하나의 업. 곧 현상으로 드러난다.. 라고 할수 있는 거겠지요.

    그래서 그 보는순간 만큼은.. 그대로 생강나무가 바로 나고..내가 바로 생강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그래서 무아라 할수 있는 거지요.

    그것이. 수일불이. 수일진심 입니다.
    .저는. 재밌게도.. 이렇게. 풀어 보았네요.^^
    너무 엉뚱했나요.^^
  • 24-03-01 원정
    모모님이 좀 더 놓아진 것은 사실이에요.
    절로 절로 놓아질거에요.
    이해가 되면 될 수록 저절로 더 놓아질거에요.^^
  • 24-03-01 모모
    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