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피올라마음학교장의 강연이다.
꿈을 꾸면 꿈속의 내가 있고, 꿈 전체를 지켜보는 시선이 있다.
꿈이 사라져도 그 사실을 아는 시선(순수의식, 공)은 항상 그대로 존재한다.
그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잠을 잘 잤는지 잘 못 잤는지를 안다.
꿈과 현실의 구조가 다르지 않다.
꿈도 현실도 생각, 감정, 느낌 속에 살고 있다.
꿈속에서도 리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침이면 깨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깨닫기 전에는 평생 깨어난 적이 없다.
계속하여 생각, 감정, 느낌 속에 살고 있다.
자기가 아침에 깨어났다는 느낌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게 문제다.
예수님이 깨어나라고 하는 것은 잠에서 깨어나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불성, 성령, 공, 순수의식) 그 자체로 깨어나라는 것이다.
깨어나면 악몽이든, 길몽이든 꿈일뿐이다.
자각몽은 존재의 중심이 대부분(예를 들어 약 90%)이 위 시선(순수의식, 공)에 있다.
그래서 꿈일 줄 안다.
비유하면 깨달은 자도 그렇다(이 현실이 꿈인 줄 안다).
깨달은 자는 육체에 달린 눈이나 감각에 10% 비중밖에 없다.
모든 능력을 발휘하지만, 존재의 중심이 거기에 가 있지 않다.
이렇게 되어야 여러분은 모든 게 환상임을 볼 수 있다.
어떤 것이 실제와 리얼리티를 갖는 것은 여러분이 리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리얼이다.
꿈속에서도 리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리얼이 되는 것이다.
정견한다는 것은 매순간 깨어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 시선에서처럼 온 세상 전체가 하나의 눈 안에 있게 된다.
나머지는 이 눈에 의하여 투사되고 비춰진 환영들처럼 보인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법안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깨어난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별것 아니다.
위 시선으로 보면 색즉시공이고, 잠시 여러분의 주의를 기울여 위 꿈속 주인공에 중심을 증폭시키면(예를 들어서 10%를 50%로) 공즉시색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공즉시색을 너무 많이 해서 탈이다.
자기 번뇌, 걱정, 근심을 공즉시색해서 증폭시켜 자기를 충분히 괴롭하고 있다.
내가 이 짓을 하고 있구나 하고 깨어나야 한다.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현상 자체가 진리의 현상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 속에서 모든 것으로 사시면서 모든 것의 움직임에 같이 하고 계신다.
또, 모든 것 속에서 그것이 독자적으로 살아오면서 만든 생각, 감정, 느낌을 또 허용하신다.
절묘하다.
눈 뜬 자는 이걸 꿰뚫어 보고, 눈 감은 자는 자기 안의 하나님을 못 보는 것이다.
자기 생각, 감정, 느낌만이 전부인 줄 안다.